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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4월, 학교에서 큰 사건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해 9월부터 이유없이
입술이 터지고 헐고 피가 나고 진물이 나는 일이 생겼습니다
피부과에서 알레르기 검사 50가지를 해 보아도
입술을 면도날로 긁어 검사를 해 보아도
원인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한의원엘 갔습니다
홧병이랍니다. 가슴에 차 있는 열이 갈 데가 없어서
입술로 나타나는 것이랍니다. 위장과 신장이 다 약해졌답니다.
체질도 변했답니다. 차가운 체질이었는데,
이젠 허리 위로만 열이 차 있고 순환이 안된답니다
약먹고 침맞았습니다. 변화없습니다
자다가도 벌떡벌떡 일어날 만큼 스트레스를 받았으니
어쩌면 당연하다 할 수 있을까요?

입술에 대해서는 포기했었습니다
여름 겨울 가리지 않고 발라댄 입술보호제만
열 개 가까이 되는 것 같습니다
(예전에 겨울에 간혹 입술보호제를 사면
늘 다 못 쓰고 오래되어 버렸는데, 다 써서 버렸습니다
유리아주, 크리니크, 아비노, 알로에, 니베아까지 종류도 다양합니다)
어떤 일에 집중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책을 읽다가도, 밥을 먹다가도, 잠을 자다가도 따갑고 가려우면
벌떡 일어나 입술보호제(혹은 연고)를 찾아 달려갔습니다
너덜너덜 일어난 입술을 뜯는 일은 버릇이 되었습니다
매운 걸 먹어도, 혹은 먹지 않아도
날씨가 건조해도, 혹은 건조하지 않아도 그랬습니다
원인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주위 사람들은 만날때마다, "피곤한가보다" 했습니다
설명도 힘들어서 그냥 "좀 그래요" 하고 말았습니다

이렇게 살면 안될 것 같아서 정말 오랫만에 TCF에 갔습니다
어쩌다 보니 TCF수련회를 대구대에서 했고,
어쩌다 보니 담임목사님께서 말씀 강해를 하시게 되었습니다
매주 듣는 말씀이지만, 그래도, 하는 마음으로 갔습니다

첫날 기도하시는 선생님께서는 두 가지를 눈물로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함께 기도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 이 말씀이 믿어지게 하시옵소서
그리고 기적을 일으켜 주시옵소서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안일했구나, 아직 정신 못차렸구나
그리고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늘 듣던 말씀이라 생각지 않게 하시고 믿게 하옵소서
기적을 일으켜 주시옵소서, 알수없는 소망이 생겨났습니다

첫날 말씀을 들으며
그동안 내가 얼마나 찌질해져 있었는지를 발견했습니다
나는 안돼, 못해, 이젠 하나님께 아무 기대도 할 수 없어.
더이상 나는 아이들을 사랑할 수 없어.
예전처럼은 학부모를 품을 수 없어.
나는 그렇게 사랑했는데 그들은 나를 배신했으니까.
나는 더이상 사랑하고 싶지 않아...
이런 마음으로 가득차서, 학교를 직장으로 바라보고 싶어하던 저를
기독교사로서의 정체성을 놓아버리고 싶어하던 저를 발견했습니다.
기도하라 하셨습니다
어려운 말로 기도하면 하나님도 못 알아들으신다고
있는 그대로 하나님께 말씀드리라 하셨습니다
그래서 그대로 했습니다
눈물로, 주체할 수 없는 눈물이 그야말로 수돗물처럼 흘렀습니다

둘째날 오후, 서상복선생님의 선택식강의를 들었습니다
또 자존감과 정체성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네 남편은 예수님이시다, 너는 예수님의 신부이다
몸의 남편이 있음으로 기쁘고 행복하지만, 그가 없이도 너는
혼자서도 기쁘고 행복한 존재여야 한다. 그래야 가정이 선다
어릴적부터의 상처와 나의 찌질함(?)에 대해 복습시켜 주셨습니다
웃다가 울다가, 설교도 아닌 강의를 그렇게 들었습니다

둘째날 저녁 말씀을 들으며
자아상의 회복을 위해, 하나님의 세미한 음성을 듣기 위해 또다시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제가 그 아픔을 놓겠습니다. 용서하고 내려놓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제게 주신 고난이 저를 위한 것임을 인정하겠습니다
깨지고 넘어지고 실패했지만 다시 세미한 음성을 듣고 싶습니다...
하나님은, 저의, 주님이십니다. 인정했습니다.

말씀을 듣고, 피곤한 몸을 뉘였습니다.
평균 취침시간 11시, 기상시간 6시 30분.
밤에 깨는 횟수 평균 5회. 충분한 휴식은 절대 아니었습니다.

아침에 일어났을 때 이상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평소같으면 일어나자마자, 혹은 세수하자마자
입술보호제나 스테로이드나 항바이러스제를 발라 문질러야 하는데
아무 느낌이 없었습니다. 만져봤습니다. 매끈합니다.
분명 전날까지 각질이 일어나서 막 잡아 뜯었는데.
믿겨지지 않았습니다다.
이러다 다시 한 시간 뒤에 물집이 생길지도 몰라.
아침을 먹고 나면 예전처럼 또 허옇게 일어날 지도 몰라.
그러나 하루를
온전히
멀쩡하게 보냈습니다.
매운 국을 먹어도 살짝 간지러우려다가 말았습니다
아, 하나님.

셋째날 저녁.
우리 구역장님이 정보를 흘린 것도 아닐텐데, 목사님은 또 제 이야기를 하십니다
원인 모를 병이 생기는 사람이 있다. 병원에서 못잡는다.
그런 사람은 영적으로 민감한 사람이다. 채워지지 않아서
문제가 생긴 거다. 말씀 붙들면 낫게 된다.

제 마음을 누르고 있던 사건에 대한 문제는 저 멀리 달아났습니다.
결국은 내가, 계속 그 문제를 붙들고 스스로를 불쌍한 사람으로
만들어가고 있는 거였습니다. 하나님 앞으로는 안 나오고.
그리고 입술은,  손가락으로 스윽 문질러본 지금, 멀쩡합니다.
하루에도 몇 번씩 거울을 보면서 매끈한 분홍빛 입술을 보며 웃습니다.
며칠전까지 허옇게 일어나고 보라색으로 색이 죽어가던 입술이었는데...
은혜입니다. 은혜로다, 주의 은혜.

(작은 일일 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뭐 입술 벗겨진다고 죽나... 하실 분들은 하루만 입술껍질 벗기고 살아 보십시오 ^^;)

모태교인이고, 구원의 확신도 있고, 은혜도 받았고, 기독교사로 출발했지만
엘리사의 무능한 제자처럼 나도 주어진 문제에 대해 어찌할 바를 몰랐습니다.
"아 아, 이는 빌어온 것이니이다." 아 아가 웬말입니까,
하지만 그 '아 아'에 엘리사는 하나님의 능력을 드러내었습니다.
하나님은 나를 아시고 나의 약함도 아십니다.
그리고 하나님 앞에 내어놓을 때 치유하셨습니다.
늦었지만, 하나님께서는 늦었다고 타박하지 않으셨습니다.
강해 끝나고 짧은 기도시간마다, 하나님께서 제 마음에 주시는 감동은
그래, 잘 왔다, 이제라도 잘 했다. 참 힘들었지? 그래... 나도 너를 보면서 아팠다...
위로의 마음이었습니다. 돌아온 탕자를 맞이하는 아버지의.

그러나 또한, 나는 압니다.
하나님의 은혜의 감격은 잊기에는 너무나 위대하고 크지만
나는 육체라는 그릇에 담긴 인간이기에
이 은혜를 유지하고 기억하기가 너무나도 어렵다는 것을.
1년 넘게 나를 괴롭혔던 이것이 사라진 지금은 너무나 기쁘고 감격스러워하고 있지만
그래서 아마 며칠 이내에, 몇달 이내에
가슴에 담은 이 느낌은 색이 바래져버릴지도 모르겠습니다.
나이 서른 여섯이 되어서야 아주 조금 나를 알겠습니다. 믿을 수 없는 나를.

그러므로 나는 하나님의 세미한 음성을 계속 구해야만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 하나님께서 시작하셨고 이루셨고
그분은 내 주님, 내 주님이시며 내 영과 육의 의사이시다
그분이, 그리고 그분만이 나를 고치신다.
이것은
변할 수 없는, 삶이라는 시간 속에 새겨진 사실 - 실재입니다.

하나님.
잊지 않게 해 주세요
혹시 잊게 되거든
잊기 전에 더 큰 은혜를 주세요

하나님,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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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1.30
23:51:27 (*.143.89.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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