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기독교사회 2015.8.4.화 둘째 날 저녁

예수님이 주시는 안식

 

설교자 김요셉목사, 정리 및 은혜나눔 서상복목사

 

(11:25) 그 때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천지의 주재이신 아버지여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 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하나이다

(11:26) 옳소이다 이렇게 된 것이 아버지의 뜻이니이다

(11:27) 내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내게 주셨으니 아버지 외에는 아들을 아는 자가 없고 아들과 또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는 자 외에는 아버지를 아는 자가 없느니라

(11:28)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11:29)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11:30)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

 

구약에서의 안식일을 예수님은 폐하신 것이 아니라 완성하셨으며, 안식일의 주인이 되셨다. 진정한 안식일이 되게 하셨다. 행동거지를 모두 바꾸고 거룩해져야 교회 가는 것이 아니라 있는 모습 그대로를 받으시는 주님 품 안에 안기는 것이 신앙이다. 우리가 주님께 안식하지 못하는 이유는 이 모습을 주님이 싫어하시고 받으시지 않으신다고 여기거나, 다른 사람도 행동을 고치고 교회 오라고 정죄와 판단을 한다는 것이다.

(5:8)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오늘 본문은 마 11:28절만 따로 떼어서 이해하는 경우가 많다. 그렇지 않다. 마태는 11:25-30절 전체를 한 주제로 기록했다. 다른 복음서보다 마태는 예수님의 가르침을 특히 잘 기록하여 정리했다. 오늘 본문이 4복음서 전체에서 예수님의 교육철학을 가장 잘 반영한 구절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오늘 본문은 새신자 초청용으로 주로 쓰이지만 실질적으로 이 가르침을 받은 대상은 제자들이 대상이었다.

11:1절에 12제자를 명하시길 마치시고 전도에 실습을 보내시는 장면이 나온다. 그 후 제자들이 돌아와 보고하는 같은 장면이 눅 10:17-24절에도 나온다.

 

(10:17) 칠십 인이 기뻐하며 돌아와 이르되 주여 주의 이름이면 귀신들도 우리에게 항복하더이다

(10:18) 예수께서 이르시되 사탄이 하늘로부터 번개 같이 떨어지는 것을 내가 보았노라

(10:19) 내가 너희에게 뱀과 전갈을 밟으며 원수의 모든 능력을 제어할 권능을 주었으니 너희를 해칠 자가 결코 없으리라

(10:20) 그러나 귀신들이 너희에게 항복하는 것으로 기뻐하지 말고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 하시니라

(10:21) 그 때에 예수께서 성령으로 기뻐하시며 이르시되 천지의 주재이신 아버지여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 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하나이다 옳소이다 이렇게 된 것이 아버지의 뜻이니이다

(10:22) 내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내게 주셨으니 아버지 외에는 아들이 누구인지 아는 자가 없고 아들과 또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는 자 외에는 아버지가 누구인지 아는 자가 없나이다 하시고

(10:23) 제자들을 돌아 보시며 조용히 이르시되 너희가 보는 것을 보는 눈은 복이 있도다

(10:24)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많은 선지자와 임금이 너희가 보는 바를 보고자 하였으되 보지 못하였으며 너희가 듣는 바를 듣고자 하였으되 듣지 못하였느니라

 

여기에는 마태복음에는 없는 내용이 나온다. 이 두 군데를 종합하면 제자들이 작은 마을에서 귀신을 쫓아내면 복음을 증거하고 돌아와 기뻐하고 예수님께 보고한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예수님은 제자들을 보내고 세 도시 고라신, 벳새다, 가버나움에서 가장 기적을 많이 행하며 복음을 증거했지만 실패한다.

 

(11:20) 예수께서 권능을 가장 많이 행하신 고을들이 회개하지 아니하므로 그 때에 책망하시되

(11:21) 화 있을진저 고라신아 화 있을진저 벳새다야 너희에게 행한 모든 권능을 두로와 시돈에서 행하였더라면 그들이 벌써 베옷을 입고 재에 앉아 회개하였으리라

(11:22)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심판 날에 두로와 시돈이 너희보다 견디기 쉬우리라

(11:23) 가버나움아 네가 하늘에까지 높아지겠느냐 음부에까지 낮아지리라 네게 행한 모든 권능을 소돔에서 행하였더라면 그 성이 오늘까지 있었으리라

(11:24)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심판 날에 소돔 땅이 너보다 견디기 쉬우리라 하시니라

 

이 두 가지 역설적인 장면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기적으로 기뻐말고 구원 받은 것에 기뻐하고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내게 달라고 하시고 주님의 가벼운 멍에를 메라고 가르치시게 된다.

업적과 괴업중심, 실적중심에서, 많은 일을 하는 것이 좋다는 것에서 벗어나서 구원의 즐거움을 가지라고 하신다. 그리고, 여러 무거운 짐을 주님이 져 주니 와서 쉬어라고 하신다. 참 대비되는 것은 제자들은 실패하면 낙담하고 좌절하고 성공하고 일이 잘되면 금방 즐거워하는데 예수님은 성공보다 구원을 기뻐하며, 실패해도 낙담과 좌절이 없는 안식을 가르쳐주고 계신다.

영원토록 우리가 예수님께 배워야 할 내용이고 우리 역시 주변과 교회에서 가르쳐야 할 내용이다. 그래서, 몇 가지 이 본문 말씀이 주는 예수님의 교육핵심과 안식일 개념을 알아보자.

 

1. 참 안식은 하나님의 섭리를 의지하는 데서 온다. 그래서, 성공과 실패 모두에서 기도하므로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라.

 

예수님은 전도에 실패에서 기도를 하셨다. 그리고 슬기로운 자들에게는 감추시고 어린 아이에게는 보이시는 아버지의 뜻을 보았다. 우리의 실패의 자리에서, 그리고 성공의 자리에서 그 자체로 행불행을 온몸으로 받아내지 말고 하나님의 섭리를 찾아내고 그 것으로 더 감격하는 것이 안식이다. 하나님의 섭리는 내게 공동체에 가장 선하시며 좋은 것이기 때문이다.

 

2. 과업중심적(Know How) 앎에서 관계중심적 앎( Know who)으로 안식하자.

제자들이 귀신을 쫓아낸 것을 기뻐한 것은 과업 중심적, 일중심적 관계이며, 앎이다. 우리 열심 있는 성도나 리더 및 목회자 역시 하나님을 알되 내가 잘 헌신하고 봉사하고 충성하고 성공함으로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과업중심형 앎의 신앙이 많다. 하지만 하나님은 우리를 어떤 일을 하는 모습이 아니라 아들과 아버지로 만나고 싶어하신다. 아버지는 아들의 일보다 아들 자체를 기다리고 좋아하고 관심이 있다. 아들도 아버지를 어떤 스팩이나 업적보다 아버지로의 관계로 알고(Know) 사랑한다.

예수님은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고 어떤 일이 성공한 것으로 기뻐하지 말라고 하신다. 하나님은 우리를 자녀로 사랑하시기에 아버지의 관계 안에서 우리의 일의 성공과 실패에 상관없이 자유하고 풍성한 복을 누려라는 것이다. 또한 그런 누림과 쉼으로 우리가 상대하는 가족과 성도와 사람 모두도 과업중심적(Know How) 앎에서 관계중심적 앎( Know who)으로 사랑하고 사는 것이 안식이다고 가르치고 계신다.

 

3. 예수님은 우리를 그대로 받으시기에 안식이 주어진다.

하지만 우리는 생존경쟁 사회와 상대주의 관점의 사회, 인본주의 사회에 물들어져서 무조건적인 수용을 받아본 적이 없고 또 그렇게 할 힘도 없다. 그래서, 예수님과 하나님을 믿고 사랑하는 신앙도 거래와 조건으로 덮혀 있다. 여기에 쉼이 없고 피곤과 열등과 좌절이 많을 수밖에 없다.

 

< 우리가 예수님과 관계하려면 >

1) 우리에게 짐이 무거움을 인정해야 한다. 짐을 많이 졌음을 인정해야 예수님께 짐을 맡길 수 있다. 예수님께 자주 나가 자주 짐을 맡겨야 한다. 내가 짐을 지고 가면 잘 되지 못함을 인정해야 한다. 깊은 죄성과 이기심, 한치 앞도 보지 못하는 연약함, 더 옳고 선하며 유익한 것을 알지 못하는 부족한 지혜를 인정해야 한다. 그래서, 예수님의 가르치시는 말씀의 안내를 전적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그리하면 쉽이 있고 짐이 가볍다. 자기 가정의 짐, 사명의 짐, 신앙의 짐 모두를 홀로 지고 알아서 가니 더 무거워지는 것이다. 주님께 힘들다고 못한다고 인정하고 주님이 하라 시는 그 가르침을 배워야 한다. 가장 놀라운 가르침은 내가 가장 모른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 즉 안식은 예수님께 짐이 많다고 인정하며, 그래서, 어떻게 하면 좋은지 말씀의 가르침으로 해답을 얻을 때 시작된다.

(11:29)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11:30)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

 

2) 예수님의 목적은 우리에게 쉼을 주시는 것이다.

일을 많이 시키거나 어떤 업적을 위함이 아니다. 차를 타고도 짐을 들고 있는 어리 섞음에 주님께 짐을 드리고 쉬지 못하는 어리 섞음이다. 차를 탔으면 들었던 짐을 이제 차에 내려놓고 쉬면된다. 주님을 따르면서도 온갖 짐을 혼자 지고 들고 가는 그 길은 차 타고도 짐을 들고 힘겨워하는 어리 섞음과 같다고 하겠다.

우리들의 영성은 매우 율법적이다. 예수님이 쉬라고 하지 않으실 것 같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내 주변의 다른 이들이 힘들어하는 영성이다.

이제는 안식하자. 예수님은 우리의 짐을 대신 지시려고 부르셨다.

 

학교(School)의 라틴어가 Schole에서 기원되었다. 이 단어는 Leisure, 즉 쉬는 여유가 있는 곳이 학교이다. 하지만 학교는 단지 산업사회에 알맞은 인간육성에 목적을 두고 있다. 이는 공산주의 정신과 크게 벗어나지 않는 것이다.

교회도 지치고 힘든 성도가 안식하는 곳이 되어야 하는데 과업중심적 만남의 장이 되고 피곤이 쌓이고 있다. 조직에 부속으로 돌아가는 피곤함이 있다. 쉼이 불안해진 가정과 교회, 학교가 되고 있다. 노래의 중요한 요소에 쉼표가 있듯 쉼이 있어야 노래도 일도 있다. 쉼은 노는 것과 휴식하는 것과 다르다. 안식이 쉼이다. 내가 안식하지 못하면 다른 사람을 수용하지 못한다.

예수님이 내게 배우라 하심은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라는 말씀이며 이 말씀의 종착역은 안식이다. 결국 예수님의 안식을 배우라는 것이다.

 

4. 쉽고 가벼운 멍에를 매는 것이 안식이다.

안식은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멍에를 매는 것이다. 이 것은 진정한 쉼 안에는 주님의 멍에를 매는 것과 주님께 배우는 두 가지가 같이 포함 된 매우 역설적이고 큰 의미가 있는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쉽고 가벼운 멍에와 수고하고 무거운 멍에가 있는데 이를 정리해 보면

 

멍에(Yoke)

어렵고 무거운 멍에

쉽고 가벼운 멍에

1. 안식의 의무, 율법을 모두 지키는 것

- 제자들이 이삭 먹을 때, 손 마른자 고칠 때, 38년된 병자를 고치는 것에 안식일 논쟁

2. 성수주일이나 주일 성수를 안식일로 접목 시킨 것은 성경적이지 않았다.

3. 어떤 것이 안식일을 지키는 것인지 자꾸 따지는 것

4. 다른 사람의 잘못을 비판하는 도구가 될 때

1. 안식이 자유함이 될 때이다. 정형화가 아니다. 꼭 이래야 된다가 없다.

2. 자신에게 적합한 것을 선택한다.

3. 수정과 교정이 수월할 때이다. 초반부는 사실 피땀 흘러 고생할 수도 있으나 나중에는 진정한 자유가 된다.

4. 주님의 마음을 느낄 때이다. 초대권이지 명령이 아니다.

5. 주님의 가르침을 잘 배우고 주님의 멍에를 매는 것이다.

6. 내 방법이 아니라 주님의 방법을 따를 때이다.

 

강제로 씌움이 아니라 스스로 멍에를 메고 예수님의 큰 멍에 지시고 가시고 나는 그 옆을 따르면 실질적인 것은 주님이 거의 다 짐을 지고 끌고 나는 단지 그 옆에서 가는 것이 된다. 그래서, 지기 쉽고 가벼운 멍에이다.

 

5. 안식을 지키는 자는 진정한 예배와 부활에 참여하며, 영원한 하나님 나라를 누린다.

안식일을 철저하게 바르게 예수님도 지키셨다. 다만 유대인과 바리새인들에게 안식일 논쟁에서 야단치신 것은 안식일의 참된 것을 지키지 않고 무거운 계명으로 율법적으로 지키고 있는 것을 수정하신 것이다.

두 여인이 안식을 지켜 예수님의 돌아가신 날 금요일 저녁이 오면서 시체에 향품과 향유를 바르지 못하고 돌아가 안식한다. 너무나 놀라운 것은 약품을 바르지 않으면 시체가 썩는 데도 안식에 대해 철저하게 지키고 감각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이다.

(23:52) 그가 빌라도에게 가서 예수의 시체를 달라 하여

( 23:53) 이를 내려 세마포로 싸고 아직 사람을 장사한 일이 없는 바위에 판 무덤에 넣어 두니

(23:54) 이 날은 준비일이요 안식일이 거의 되었더라

(23:55) 갈릴리에서 예수와 함께 온 여자들이 뒤를 따라 그 무덤과 그의 시체를 어떻게 두었는지를 보고

(23:56) 돌아가 향품과 향유를 준비하더라 계명을 따라 안식일에 쉬더라

(24:1) 안식 후 첫날 새벽에 이 여자들이 그 준비한 향품을 가지고 무덤에 가서

 

안식의 지킴이 없던 무덤을 지키던 자(로마군인들)은 주님의 부활을 보고 두려움에 기절하고 쓰러져 부활에 참여하지 못하였다. 하지만 두 여인은 경이로움으로 두려워하면서도 크게 기뻐하며 제자들에게 소식을 전한다. 가장 먼저 부활의 기쁨을 누린다.

여기에서 끝나지 않고 부활하신 예수님의 발을 붙잡고 경배를 함으로 참된 예배자가 된다. 이는 영원한 하나님 나라의 부요함과 자유를 누리는 진정한 쉼을 말하는 것이며, 안식의 완성을 보여 준다.

 

(28:1) 안식일이 다 지나고 안식 후 첫날이 되려는 새벽에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마리아가 무덤을 보려고 갔더니

(28:2) 큰 지진이 나며 주의 천사가 하늘로부터 내려와 돌을 굴려 내고 그 위에 앉았는데

(28:3) 그 형상이 번개 같고 그 옷은 눈 같이 희거늘

(28:4) 지키던 자들이 그를 무서워하여 떨며 죽은 사람과 같이 되었더라

(28:5) 천사가 여자들에게 말하여 이르되 너희는 무서워하지 말라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를 너희가 찾는 줄을 내가 아노라

(28:6) 그가 여기 계시지 않고 그가 말씀 하시던 대로 살아나셨느니라 와서 그가 누우셨던 곳을 보라

(28:7) 또 빨리 가서 그의 제자들에게 이르되 그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셨고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시나니 거기서 너희가 뵈오리라 하라 보라 내가 너희에게 일렀느니라 하거늘

(28:8) 그 여자들이 무서움과 큰 기쁨으로 빨리 무덤을 떠나 제자들에게 알리려고 달음질할새

(28:9) 예수께서 그들을 만나 이르시되 평안하냐 하시거늘 여자들이 나아가 그 발을 붙잡고 경배하니

 

말씀을 맺으며

 

멜딕의 소설 모비딕에 보면 거친 풍랑 위에서 포경선 피쿼드호(선장 에이허브)가 거대한 흰고래를 잡기 위해 모두 분주히 노력하고 바쁠 때 유일하게 조용히 가만히 있는 한 사람이 있다. 이는 고래에게 던질 작살을 들고 과녁을 조절하기 위해 작살을 들고 조용히 움직이지 않고 멈추고 있는 작살 던지는 사람이다. 온전히 집중하고 있다. 이 사람은 움직이거나 분주하면 안 된다. ‘조용함에서 게으름에서 과녁을 맞추어야 한다.’ 모두 작업 중에 작살을 들고 멈추는 그 일이 가장 중요한 일이다.

다른 한 가지 쉼의 중요성을 보여주는 세계적인 프로선수들 중에 최상위권과 중위권 선수들은 실력과 조건은 거의 구별이 되지 않는데 유일하게 다른 것이 있다면 포인트와 포인트 사이에 쉬는 시간에 온전히 집중하여 쉼을 더 길고 확실하게 가질 수 있다는 것이다. 러시아 테니스 선수 마리아 샤라포바(Maria Sharapova)는 한 포인트 후 바로 하지 않고 약 5-10초 정도 뒤돌아서 멈추어서 확실하게 쉼을 가진 후에 다음 포인트를 위해 시작을 한다는 것이다. 쉼이 결국 힘이다.

 

쉼이 능력이고 쉼이 목적이다. 하나님 앞에서 우리도 정기적으로 멈추고 쉬어야 한다. 나의 나됨으로 돌아가고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온전히 보고 경배하여야 한다. 그 것이 쉼이고 안식이다.

우리의 싸움이 혈과 육의 싸움이기에 모비딕의 작살 던지기 전의 집중하는 쉼처럼 우리의 안식과 쉼에 무서운 능력과 힘이 있는 것이다.

잊지 말자. 참 안식은 하나님의 섭리를 의지하는 데서 온다. 그래서, 성공과 실패 모두에서 기도하므로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자. 나의 소견 옳은데로 살면 나의 수준의 인생만 펼쳐지며 영적 싸움에서 판판 깨어진다.

과업중심적(Know How) 앎에서 관계중심적 앎( Know who)으로 하나님을 알고 만나자. 그리고 가족과 다른 사람도 모두 그렇게 관계중심적 앎으로 대하므로 안식하자.

예수님은 우리를 그대로 받으시기에 안식이 주어진다. 그래서, 우리에게 짐이 무거움을 인정해야 한다. 짐을 많이 졌음을 인정해야 예수님께 짐을 맡길 수 있다. 예수님께 자주 나가 자주 짐을 맡겨야 한다. 이제는 안식하자. 예수님은 우리의 짐을 대신 지시려고 부르셨다.

아무 것도 하지 않고 게으르면 휴식하는 것이 안식이 아니다. 진정한 안식, 쉼 속에는 주님의 뜻을 배우고 주님의 멍에를 매고 사는 것이 포함 되어있다. 그래서, 초반은 힘들 수도 있으나 중후반으로 갈수록 진정한 자유와 쉼이 주어진다. 이 것이 쉽고 가벼운 멍에를 매는 것이며 안식이 되는 것이다.

두 여인이 안식을 지키므로 진정한 예배와 부활에 참여하며, 영원한 하나님 나라를 누리듯이 우리의 안식일을 지킴과 안식을 진정으로 누림으로 하나님 나라를 이 땅에서 살아가자. 그 것이 하나님이 가장 우리에게 주시고 싶은 것임을 또한 알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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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진우

2015.08.07
10:4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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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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