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롬

말씀 정리와 받은 은혜를 버무려 말씀강해를 정리를 해서 올립니다.


먼저는 제가 누린 은혜의 고백이며,


두번째는 섬김다고 같이 설교를 듣지 못하신 인천 선생님들에게 감사와 함께 드리고 싶은 조그마한 선물입니다.


셋째는 참가 하지 못한 선생님께서도 동일한 은혜를 나누어 2014년 한해도 승리하자고 함이며,

마지막으로는 몇 년 전 제가 전교조도 회비를 내는데 하나님 나라를 교단에서 이루겠다는 우리가 회비를 내지 않아서 되겠는가 회비를 내자고 외치면서 우리 같이 이 공동체에서 늙어가자.  늙어감의 영성, 간증을 크게 못해도 머물기라도 하자. 머뭄의 영성, 현장의 승리를 못 전해도 살아가고 있으며 버티고 있다고 말하고 나누자고 했던 것의 다시 한번 외침입니다.

  

   그래서, 나이든 50,60대가 군데 군데 견디고 머물자고 했던 그 고백대로 벌써 tcf에 저도 20년 넘었네요.

 

선생님들 같이 견디고 머뭅시다. 우리와 동행을 더 원하시는 하나님께 그리 합시다. 아멘


50대 60대에 수련회에 오신 분과  벌써 tcf 10년이 넘기고 20년을 넘긴 분들 그대들이 진정한 승리자입니다. 부디 끝까지 견디고 버팁시다.


그 자리에 하나님도 같이 계시게 되어 하나님이 결국 교단을 붙드실 거니까

그리고 무너져 가는 교회도...


tcf 그루터기 처럼 눈물겹게 버티고 있는 문춘근 목사  옆에 그 비슷한 바보 서상복 목사 드림



주님과 동행하니 기쁘지 아니한가?(2-7)

 

 

강해 1. 나는 여호와로라. - 절망 속에 만난 하나님 나라 이야기

2:23-3:22

 

1. 기지개를 켜는 구원의 역사

1) 정치적인 변화(2:23; 4:19); 모세는 40살에 자기 나름의 방식대로 민족을 위하고 하나님을 위한다고 하였으나 결과는 한 애굽 사람을 죽이고 애굽의 반역자로 지명 수배되는 상황이 되었다. 광야 이드로의 집에서 피해 40년을 살면서 80살이 되면서 모세를 지명 수배하던 왕조가 사라지고 새왕조로 정치적인 변화가 일어난다.

왕자 신분에 젊고 힘 있으며, 조직의 힘도 가지고 있을 때 그 때, 하나님은 사용하지 않으시고, 하나님 나라의 일을 하나님 방식으로 할 준비가 되었을 때 비로써 사용하신다. 그 때까지 훈련하시고 기다리는 분이 하나님이시다.

작금의 교회 어려움과 기독교의 불신은 결국 하나님께 준비 되지 못한 이들이 하나님과 동행을 가장 큰 기쁨으로 가지지 못한 채 하나님과 동업을 하며 자신의 나라를 이루었기에 나타나는 현상일 것이다.

나의 지금 이해 할 수 없는 모든 환경과 일들이 하나님 나라의 큰 크기를 감당할 그릇으로 변화시키시거나 아니면 일을 하였을 때 사람들이 내가 아니라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도록 되었을 때 하나님은 사용하신다. 그래서, 하나님은 본질상 교제와 사귐과 사랑을 나누고 싶으신 것이다.

이런 하나님이 우리에게 향하신 일하심과 사랑을 통전적으로 보고 인내함으로 소망을 가지고 날마다 하나님과 동행을 이루기 바란다.

 

2) 고된 노동으로 탄식(2:23)

3) 영적 상황의 변화(2:23-25); 이스라엘 백성에게 오래 전 아브라함에게 했던 언약을 기억하셨다. 남편이신 하나님이 신부 이스라엘을 위하여 하신 약속을 기억하신 것이다. 하나님의 소원은 사귐이며 동행이 본질인데 우리는 늘 우리의 소원을 이루어주시는 분으로 그 분의 일을 위해 단지 사용 되는 소비적인 사람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기쁨과 감격이 없는 신앙생활을 하는 경향은 하나님을 신랑의 관계로, 언약의 하나님으로 바르게 알지 못한 까닭이다.

4) 큰 손의 움직임(25)

충분히 상황을 점검하시고 또 점검하심(2:25; 3:7, 16) ; 400년 동안의 이스라엘이 애굽의 종살이를 하는 것을 하나님은 팔짱을 끼고 구경하시는 것이 아니었다.

3:7절에 분명히 보고라고 되어 있는데, 이는 히브리어로 보다를 두 번 반복하는 형태로 보고 또 챙겨보고의 뜻이 되어 크게 강조하는 어법인 것이다. , 50:52절에 요셉이 하나님이 당신들을 돌보시고라고 하며 똑 같은 어법으로 말하고 있다.

하나님은 나를 인격적으로 아시고 보시고 보신다는 것은 지금 나의 인도하시는 방식이 나는 느리고 하나님이 돕지 않는 것 같다. 하지만 하나님이 가장 선하게 인도하심을 전적으로 신뢰함이 강하고 담대한 삶을 살아가는 바른 믿음의 원천이 된다.

 

떨기나무 불꽃 가운데 모세를 부르심(3:2-4, 17); “모세야, 모세야라고 부르시는 것은 모세 개인이 아니라 이스라엘 전체를 부르시는 말씀이다. 직접 음성으로 부르시는 것은 모세와 3-4명의 선지자와 제자 및 바울 등에게 제한 된 것이다. 우리 모두에게 하나님의 진정한 부르심은 환경과 내 삶의 스토리로 부르시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신학생을 사귀는 자매가 자기는 사모의 부르심이 없는데 어떻게하냐고 상담하는 경우가 있다. 이미 환경으로 목회자가 될 사람을 사랑하고 있다면 환경으로 스토리로 하나님이 부르시는 것이다. 아니면 상대를 사랑하지 않고 있던가 말이다.

나의 부르심을 정확히 기억하고 확인하는 것은 굉장히 중요한 것이다. 열심히 신앙생활하는 것보다 바르게 신앙생활하는 것이 하나님이 더 기뻐하시기 때문이다.

 

2. 광야에서 영글어 가는 하늘 나그네

 

1) 40년의 광야생활 나이 80(7:7)

2) 내면의 변화: 첫째 아들 이름을 게스솜’(‘이방의 객이 되었다.’)이라고 이름을 지은 모세가 둘째 아들은 엘리에셀’(18:3-4, ‘하나님이 나를 도우셨다.’)이라 지은 것은 광야 훈련을 하시는 하나님의 인도를 정확히는 모르나 어느 정도 하나님을 알기 시작한 영적 센스가 있다는 것이다. 모세처럼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영적센스를 회복해야 한다.

하나님의 언어는 침묵으로 더 많이 말씀하신다. 부르짖음 위주의 기도와 삶으로 하나님의 바른 임재와 말씀을 알 수 없다.

우리 영이 정화되고 준비되어야 늘 나를 먼저 보시고 계시는 하나님의 얼굴을 대면할 수 있다. 1서에 하나님을 본봐요, 들은 봐요.”라고 할 때 현재완료형으로 표현한 것은 과거도 그렇지만 지금도 하나님을 보고 들을 수 있는 것이라는 것이다. 오늘 우리들의 어두운 영이 지금 하나님의 얼굴을 민감한 영적센스로 느끼지 못하는 것이 어려운 환경을 극복하려는 소원보다 본질적인 소원이 되어야 마땅하다.

모세가 자신을 부르시는 하나님의 목소리를 듣고 놀라지 않고 무슨 소리인지 헤매이지 않고 바로 내가 여기있나이다.’ 라고 힌네니한 것은 그의 영적 센스가 매우 민감해져 있음을 알 수 있다. 아브라함처럼, 야곱처럼 말이다.

하지만 사무엘은 하나님이 사무엘을 부를 때 못 알아 볼 때 제사장 엘리를 통해 다음에 또 너의 이름을 부를 때 하나님이시니 내가 여기 있나이다.”(히브리어로 힌네니’)라고 하라고 했다.

오늘도 말씀과 환경과 양심과 하나님의 사람으로 우리를 부르시는 하나님께 우리는 놀라거나 둔하여 모르거나 하고 있지는 않는지 살펴봐야 한다. 너무 신비한 방법으로 불러야 응답하려고 하는 것은 하나님을 따르는 것을 합법적으로 거부 하고 싶은 것이 우리에게 가득한 것이다.

vision이나 자기 열심이나 열정이 없는 것도 문제이나 그 것이 있다고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그 것이 더 중요한 vision과 열정을 주시는 하나님께 집중하는 것을 잊어버리거나 하나님 없이 자기 발전기로 달리는 실수를 범할 수 있다. 마치 40세 때 모세 같은 열정과 비전으로 살아가는 우리 자신이 아닌가?

하나님이 너를 통해 일하겠다고 할 때 바로 아멘이나 아무 생각 없이 무조건 반응하는 것은 진정한 순종이라기 보다는 인격적인 사귐과 토론이나 사랑이 배제된 주종관계의 어색함이다. 또 유교문화의 거절하는 것은 무조건 나쁜 것이니까라는 생각으로 하는 영적 무딤이 자리 잡고 있는지도 모른다.

오늘 본문의 모세처럼 5가지로 하나님의 부르심에 이 것 저 것 물어보고 따져보는 것은 모세의 진정한 순종은 하나님을 인격적인 사귐과 사랑의 대상으로 생각한데서 오는 것이다.

 

3) 내공을 쌓는 모세

미디안의 제사장 이드로의 양떼를 침(2:16; 3:1) ; 두 군데에서나 아브라함의 아들이며, 제사장인 미디안의 사위로 장인의 양 떼를 친다고 성경이 언급하는 것은 영적멘토로 하나님이 모세를 훈련하시고 내공을 쌓게 하시는 놀라우신 인도이셨다.

출애굽 중에 장인 이드로가 모세에게 50부장, 100부장, 1,000부장을 뽑아 자신의 일을 분담하는 것이 어떻냐고 권면할 때 늘 하나님의 직통 계시를 받는 모세가 망설임 없이 그대로 시행하는 것을 보아도 알 수 있다.

이 세대도 영적 멘토를 통해 일하시는 하나님이거늘 우리는 너무 홀로 잘나가려하는 경향이 바른 하나님의 나라의 일을 이루지 못한다는 것을 묵상해 본다. 속한 교회이든 특히 기독교사로 속한 tcf에서의 지역모임이나 수련회 등에서의 멘토를 만나 동역자를 갖는 것은 우리에게 향하신 하나님의 내공 연수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깊어진 영적 내공(4)- 22:11; 46:2 ; “모세야, 모세야라고 두 번 부르실 때 내가 여기 있나이다.”(히브리어로 힌네니’)라고 한 것은 이미 모세가 하나님을 알아본 영적센스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힌네니는 성경에 3번 나오는데,

첫 번째는 창 22장에 아브라함이 이삭을 바칠 때 하나님이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라고 부르실 때 내가 여기 있나이다.”(히브리어로 힌네니’)라고 했다.

두 번째는 창 46장에 야곱이 요셉을 만나려 가나안과 애굽의 중간 지점인 브엘세바에 머물 때 하나님께서 야곱아, 야곱아라고 부르실 때 내가 여기 있나이다.”(히브리어로 힌네니’)

세 번째는 오늘 본문인 모세를 부르실 때이다.

모세는 가나안 입성 직전 120살이 되어 마지막 죽음 전에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나님에 대해 소개하면서 이 출애굽기 말씀을 쓰면서 말씀하였다. 자신이 하나님을 알아본 것 같지만 사실은 하나님이 자신을 늘 보신고 이끌어 오셨음을 고백하는 것이다.

우리도 지금 힘든 현실에서도 분명히 모세처럼 힘이 나는 것은 그 가운데 있는 나를 나와 상관 없이 절대적으로 선하시고 신실하신 하나님께서 자세히 지켜 보시며 동행하고 계시다는 것은 모세에게처럼 우리에게도 가장 큰 힘이다.

 

3. 떨기나무 불꽃 앞의 모세

 

1) 모래 바람 속에 쌓여온 문제

하나님에 대한 이해의 궁핍 ; 애인을 모르고서도 상대를 사랑한다는 것은 결국 자기 사랑일 뿐이다. 이 당시 이스라엘도 모세도 진짜 문제는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사귀기도 알지도 못하면서 애굽식으로 하나님을 자신의 문제해결식의 대상으로만 알고 있었다는 것이다. 이런 잘못된 하나님에 대한 이해를 해결하지 않고는 이스라엘과 신부로 삼아 언약을 이루며 사랑하기는 어렵기 때문에 이 것을 해결하는 것이 하나님에게는 제일 큰 해결점이었다. 그래서, 하나님은 모세를 기다리게 하고 단련하고 10가지 과정으로 하나님이 누구이신지 알게 하시려는 일을 하신다. 하지만 이스라엘과 모세는 하나님을 알아서 사랑하려 하지는 않고 문제해결에만 관심이 갔다.

하나님께 출애굽이나 가나안 입성은 어려운 문제가 아니었다. 다만 사랑하는 신부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사귀려고 하지 않고 이용하려고만 하니 사랑하는 관계로서는 참으로 답답한 일이다.

우리의 환란이나 하나님의 침묵에는 우리의 하나님에 대한 이해가 세상적이며, 자기 욕심이나 자기 인식의 한계에 하나님을 가두어서 생각하고 사랑하는 것은 아닌지 돌아봐야 한다.

자신의 존재감 상실 : 가시떨기 같은 모습이 이스라엘이요 모세이지만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애굽에게 신 같은 존재로 여겨지게 되는 것이 자신의 정체성이요 하나님의 의도이시다. 그렇다. 깊은 자기 부족을 알면서도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강함과 사랑을 아는 것이 참으로 중요한 자기 존재감이다.(3:2-4)

 

2) 질문의 본질

첫째 질문: 내가 누구관데......(3:11) - 답변은 내가 너와 함께 하겠다.(3:12)

우리들의 신앙은 지나치게 하나님의 뜻만을 찾고 묻는다. 잘못된 것은 아니지만 건강한 순서는 아니다. 마치 연인이 자신도 모르면서 애인만 위한다면 그 사랑은 집착이요 애착이 되어 상대를 숨 막히게 한다. 상대를 위한다고 하지만 편안하지 않으며 결국 바른 사랑이 아니다. 그리고 오래 가지도 못한다. 금방 방전 되어 버린다. 이런 사랑은 인격적이거나 사귐이 부족한 것이다.

그런 점에서 모세처럼 하나님의 부르심에 자신을 먼저 정확히 보는 것은 굉장히 중요한 일이다. 우리 민족은 사회적이고 정문화이며 체면문화이다 보니 자기 자신의 바른 정체성을 통찰하는 능력이 떨어지고 신앙에서도 그렇게 하면 꼭 신앙이 없는 것으로 안다. 무조건 하나님이 시키는 데로 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어느 면에서 맞지만 깊이 들어다 보면 하나님을 사귐의 사랑하는 분으로 친밀감이 있는 중요한 분으로 생각지는 못하는 것이다. 그래서, 오히려 오래 충성하면 피곤이 누적 되어 부작용이 일어나는 것이다.

내가 누구인줄 알면 하나님이 누구인지 바르게 알게 된다. 내가 무엇을 많이 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내가 누구인줄 알고 하나님이 누구이신 줄 알고 동행하는 그 일이 훨씬 본질적인 신앙생활이다.

 

둘째 질문: 당신의 이름을 무엇으로 말하리이까(3:13) - 답변은 나는 스스로 있는 자이다.”(3:14)

야훼라고 이름의 뜻을 처음으로 모세에게 밝히고 있다. 히브리어의 하이야있다.’,‘-이다.’이고 에하이야나는 있다.’라는 뜻이다. ‘야훼그분은 계시다.’라는 뜻이다. 그래서, 하나님의 이름의 뜻을 동사형태로 말씀하시는 것은 과거 영원 전 부터, 현재도, 그리고 영원 후까지 늘 계시는 분이시다는 것이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 여호와(15)라고 말씀하신 것은 워낙 부터 계시며, 조상과 인격적으로 같이 교제하시던 하나님, 영적으로 너희의 남편 되고 너희를 신부 삼아 교제하시며 사귐을 갖는 언약의 하나님이라는 뜻이다.

결국 인간과 나와 결혼하시고 그 결혼을 책임지시고 하나님 나라로까지 풍성함과 자유로움과 영원한 곳으로, 거룩한 곳으로 이끌어 가심이 하나님의 바른 이해이다.

영원 전 부터 계시고, 어제도 계시고, 오늘도 계시며, 항상 계시며, 영원히 계시며, 장차 오실 분으로 계시록에서도 야훼하나님을 확장하여 설명한다. 우리의 인식의 좁고 편협한 경계가 바른 하나님을 알면 영원한 경지와 4차원의 경지로 넓어진다.

우리들이 하나님께 갖는 이미지는 존재 근본이 되시면서도 언약의 하나님, 남편 하나님이심에 대한 바른 하나님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다. 하나님에 대한 인식이 자꾸만 세속적이고 자기 중심적인 하나님에 대한 지식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하나님을 짝사랑하게 하면서 우리의 섬김과 일을 다 함으로 하나님을 위한다고 잘못된 형태를 가질 수 있는 것이다. 바리세인과 마르다처럼, 철없는 제자들처럼...

 

4. 이야기의 주인이신 하나님

 

600여년의 이야기(3:8, 17; 15:18)- 언약상기(15:13-14)

이야기가 무르익어 가는 것을 지켜보시며 관장하심(3;7, 16)

만들어 가실 이야기 제시

- 장로들을 만나 증거(16-17)

- 바로에게 이를 말 가르치고 예견된 과정설명(18-20)

- “그들이 섬기는 나라를 내가 징벌 할지며”(15:14)

- 애굽 사람들 빈손으로 보내지 않겠다.(21-22)

- “네 자손이 큰 재물을 이끌고 나오리라.”(15:14)

비전제시 :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3:8, 17)

 

우리는 너무 현재 뜨거움이나 감정이나 이적과 기적이나 문제 해결 등으로 하나님의 임재를 생각하는 경향이 짙다. 여기에 너무 몰입하면 신비주의나 자기 중심적인 신앙이 된다.

바리세인과 서기관이 자기 중심적인 메시아관을 가지어 결국 참 메시아를 죽이는 어처구니 없는 것처럼, 군중들이 떡과 빵, 그리고 치료를 위해 주님을 따르지 그 분을 사귀는 분이나 사랑해야 할 분으로 모르듯이, 예수님의 제자들이 누가 천국에서 더 크냐로 주님을 따르고, 주님의 십자가를 이해 할 수 없으며, 주님을 위한다는 것이 어린 아이가 오는 것을 막아 도리어 주님의 사역에 방해가 된 것처럼 오늘 날 우리의 제일 위험한 신앙은 주님이 도구가 되는 것이며, 결국 자기생각, 자기소원, 자기 옳음이 우상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주님을 위해 헌신 할수록 더 인색함과 지침과 거침이 많아지고 아집이 강한 이미지로 세상에 비난 받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아야 한다.

 

하나님은 그 무엇보다도 너무나 크시며 완전하시기에 나의 인생도 소속된 공동체도 민족도 세상 전체도 스토리로 임하시고 주관하시며 섭리하시며 역사하신다.

하나님이 보이지 않는다는 분들은 삶 전체를 통전하여 보면 그분의 인도와 소원과 말씀하심이 들리게 되어 있다. 그리고 그 것은 미래의 비전을 보게 하는 중요한 하나님의 부르심으로 들리게 된다.

 

 

강해 2. 지팡이.

4:1-17

 

1. 고조되는 모세

 

1) 모세의 내면의 역동(1; 3:18)

 

2) 모세는 리더쉽 신임에 의구심을 가지고 있었다(1)

리더쉽에 상처를 한 번 입으면 또 다시 새로운 리더쉽을 갖는 것이 쉽지 않다. 사실 모세는 40살 때 동족 이스라엘로부터 자기 편에서는 위하려고 했던 모세의 행동, 즉 애굽 사람을 쳐서 죽인 것을 반가워 하지 않고 거부했을 때 리더로 거부 받은 큰 상처가 있었다.

그래서, 모세는 지금 애굽에 종살이 하는 이스라엘 백성을 구해 내라는 사명, 새 리더쉽 앞에서, ‘그들이 너의 말을 들으리니라고 하실 때 여전히 40년 전에 그 좌절과 거부된 자기의 리더쉽의 상처를 지금 다시 가슴에 덜컥 걸리는 것이다.

모세는 애굽이 두려운 것보다 실상 이스라엘 동족이 더 두려운 것이다. 그래서, 3번이나 그들은 나를 믿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하나님이 자신을 거부 할까 봐도 두려운 것이다. 그래서, 내가 누구관대라고 자꾸 두려워 하고 있는 것이다.

때로 우린 하나님을 믿는 것보다 더 믿는 것이 나를 거부 할 것이라는 것을 더 믿는다. 막힌 환경을 더 믿는다. 지난 날 부모나, 직장이나 교회에서 경험한 배반과 거부된 일들이 오늘의 하나님의 수용을 믿지 못하는 것이다.

 

여호와 그들의 조상의 하나님이란 이름 제시만으로는 한계(4; 3:15-17)

내가 누구관대...(3:11)의 문제가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하나님의 임재 약속(3:11)을 믿는다는 것에 한계

자기정체성을 바로 아는 것이 하나님 부르심의 우선되어야 할 것이다.

나는 하나님 안에 거할 때만이 비로써 자유하면 사람으로 살 수 있는 존재이다.

하나님의 임재는 오늘 순간 보다는 나의 삶의 스토리를 통해 역사하신다.

 

모세를 신임하지 않을 것을 예견하고 문제제기(1, 3;18)

시편에 다윗이 모세처럼 하나님을 생각하면 속이 상합니다.” 라고 솔직하게 하나님께 고백한다. 그러나, 우리는 어른들 앞에서 솔직하게 힘들거나 불평이 있음에도, 그저 예예하고 일단 순종하고는 가슴앓이를 한다. 그래서, 결국은 어른들과 깊은 친밀함을 가지지 못한다. 하나님께 향한 태도도 기도하거나 순종하는 형태도 솔직하게 힘든데 힘들지 않은 척을 한다. 그래야 좋은 믿음으로 보이려고 하는 것이 있다. 결국 하나님과 깊은 친밀함을 가지지 못한 낯선 관계를 오랜 신앙생활을 한다.

 

2. 세 가지 표징

 

1) 세 가지나 표징을 주시는 여호와(5,8,9)

2) 세 가지 표징의과 의미

지팡이가 뱀으로 변화는 표징, 훗날 애굽의 술객이 만든 뱀을 하나님께서 자기가 던지 지팡이가 뱀이 되어 먹어 버리는 표적; 뱀은 그 당시 지혜의 신으로, 그리고 권위를 상징하여 애굽의 왕들의 왕관이나 의자에 뱀을 새겼다. 결국 하나님의 왕 되심과 통치하심이 애굽과 사단의 세력을 멸하시고 하나님의 나라를 완성하실 것을 보이신 것이다.

이 첫째 표적이 안 되면 문둥병이 들었다가 다시 품에 손을 내니 낫는 표적; 교만과 죄에 대한 처벌과 저주를 문둥병으로 상징하던 것을 낫게 한다는 것은 그 저주를 내린 하나님 만이 할 수 있는 표적이기에 이 표적은 굉장히 직접적으로 하나님의 임재의 증거를 하나님의 일하심의 증거를 보이는 것이다.

이 두 가지도 혹 안 되면 나일강물이 피로 변화는 표적을 통해서 하나님의 일하심과 하나님이 누구이신 줄을 보여주신다.

하나님께서 첫 번째가 혹 안 되면 두 번째로 두 번째도 안 되면 세 번째로 표적을 보이심은 너무 인격적으로 모세와 이스라엘을 기다리시고 대화하시면 변화기를 바라시며 일하심을 본다. 더욱 놀라운 일은 그 표적이나 일하심보다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 자체를 교제하시고 대화하시고 기다리시는 그 것을 더 중요하게 여기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볼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언제 부터인가 우리가 많은 일을 하고 열매를 드리는 것을 하나님을 사랑하는 증표로 한다. 반면에 하나님은 그 보다는 우리 자신을 가장 큰 선물로, 우리 자신의 성숙과 변화를 가장 큰 헌신으로 우리가 하나님과 더불어 살아가는 삶을 더 중요한 헌신으로 보신다는 것을 잊고 산다.

10가지 재앙도 하나님이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을 위해서 기다리시고 위로하시며 대화하시는 것이지 애굽을 위한 것이거나 단순히 출애굽 만의 목적은 아니다. 출애굽 만이 목적이면 바로 10번째 재앙이나 한 번에 바로 애굽을 멸망시키면 되고 바로 가나안에 하루 만에 옮기시면 되지만 그 보다 더 큰 만남과 사귐, 성숙과 성화를 목표로 하시는 것이다.

우리는 내가 성숙하고 변화하는 본질적인 가치보다 나는 그대로 있고 일과 열매로 성장과 부흥으로 하나님께 나아가려고 하는 경향이 있다. 이는 마치 마르다의 분주함과 피곤함이 늘 있고 마리아가 가진 사귐과 관계에 소원을 갖지 못하는 것과 같다.

특히 재앙 중에도 독종 재앙이 애굽에게 하나님처럼 이적을 행하는 술객들에게 먼저 임하는 것이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에게 얼마나 큰 위로와 자신감과 시원함을 주었을 것이다. , 그 것을 주고 싶으신 하나님의 언약 사랑을 본다.

 

3. 뻣뻣하고 입이 둔한 자

 

1) 울퉁 불툴한 모세(10)

나는 본래 말을 잘 하지 못하는 ...후에도 역시....

모세의 불편한 심사; ‘하나님, 40년 전에 왕자일 때도, 힘이 있을 때도, 젊었을 때도, 말을 짤 할 때도, 사람이 많을 때도 일하고자 했는데 안 되었잖아요. 그 때 제대로 도와 주시고 쓰시던지 40년 더 기다려 이제 다 없고, 말도 못하며 늙은 이 나를 이제 와서 무슨 잘 될 것이 있겠습니까? 그리고 지금도 쓰시려거든 입을 잘 풀어주시고 사용하시던지 입도 둔하게 된 상태(히브리어를 거의 다 잊어가고, 애굽 궁정언어까지도 다 잊어간 지금)에서 출애굽의 사명을 감당하게 하시니 너무 하나님은 답답하십니다.’

라는 모세의 고백과 의문은 오늘날 우리들의 과제이고 물음이기도 하다. 이 믿음의 난제는 지금도 여전히 우리의 모든 사명자로의 길에 풀어야 할 문제이다. 이 문제를 통과하지 못하면 결국 하나님을 나의 인식의 틀 속에 갇힌 하나님으로 보게 된다.

 

나는 나는 말 못하고 입이 뻣뻣하고...(4;10)에서 나는은 히브리어로 아노키, 아노키라고 주어 주어를 두 번 강조함으로 매주 강한 강조어법을 사용하였다. 이는 하나님께 욱하는 감정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혈통 있는 왕자도 아니며 히브리인으로 애굽왕자로 그 것도 고향에서 모든 것을 버려진 모세의 삶이 낮은 자존감과 열등감이 있었음은 당연한 일이다.

이는 우리도 천국 백성이면서 세상식으로 살아야 하는 동일한 열등감과 비애와 괴로움이 있는 것이다.

여호와의 반문(11,12); 내가 입을 지었다. 내가 여호와다

 

4. 회피와 부르심

 

1) 오 주여 보낼 만한 자를 보내소서.(4:13); 하나님께 대한 상처(하나님의 사랑과 인도가 이해가 되지 않아 생기는) 드러냄이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다. 우리는 불교적, 유교적, 관료적, 보수적, 체면적, 수직적 문화 영향으로 하나님께 너무 체면을 많이 차린다. 그래서, 정직하지 못하며, 비굴해 지고, 순종하는 것 같지만 기쁨과 능력이 부족하다.

모세는 하나님께 구약을 통틀어 친구처럼 대화한 유일한 사람이다. 전체로 보면 하나님이 그런 모세를 싫어하지 않으시면 기다리고 얼리시며 대화하며 즐거워 함을 볼 수 있다. 마치 너무 점잖은 자녀보다 부모 앞에서 애교도 떨며, 불만도 이야기 하고 자주 속을 표현하는 자녀가 훨씬 사랑스러운 것 같은 것이다.

우리의 맹점은 하나님 앞에 너무 점잖고 철이 들어 보이려고 할 만큼 하나님을 너무 어려워 한다는 것이다.

기쁜 소식은 신약에 와서 아니 지금 이 시대는 성령으로 인하여 모두가 만인 제사장이 되어 하나님의 친구처럼 신부처럼 바로 대화하고 마음 속의 이야기를 거침 없이 나눌 수 있는 것이 우리의 하나님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여전히 성령이 없는 것처럼 구약의 하나님으로만 세상적인 가치관의 하나님로만 대하는 것이 우리의 신앙의 위험한 점이다. 그래서, 하나님 나라는 말보다 능력에 있다고 하신 것이다.

 

2) 여호와 하나님의 격노와 배려(14-17) ; 이 모습은 모세를 정말 싫어하시는 모습이 아니라 모세야, 네 형이 있잖느냐. 그만 좀 하여라.” 라시며 인격적으로 모세와 화도 내시고 감정도 나누시는 하나님을 본다. 그래서, 아론을 배려하시는 모습도 보게 된다.

5. 부르심과 우리 자신

 

아버지에 대한 어두운 상으로 하나님 아버지를 보는 자기 인식의 한계를 벗어나야 한다. 아버지에 대한 두려움과 거절감으로 인하여 속 마음 이야기를 털어놓지 못함과 불평을 말할 수 없었던 것을 벗어버려야 한다. 유교의 아버지 상을 하나님께 투사하는 것을 그만 두어야 한다.

하나님은 우리의 주인이시면 창조주와 전능자이시기도 하지만, 원수까지 용서하시고 수용하시는 언약의 하나님으로, 친구 같으며, 아바 아버지 같으며, 신랑 되시는 분으로 믿는 것 까지 되어야 바른 신앙이다.

하나님은 일을 위해서 부르신 것 같지만 그 일을 핑계로 나와 사귀고 하나님 나라를 누리며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알기를 원하시는 존재와 사귐을 더 원하신다.

지난 세월의 부모이든 교회 지도자이든 거부되고 받은 상처를 하나님 아시지요?’ 라고 대강 말하지 말고 구체적으로 솔직하게 하나님께 고백하는 것이 바른 신앙이다. 자신을 포장하지 말고 그대로 하나님께 고백하자. 그렇게 다시 하나님과 시작하여야 미성숙과 이원론에서 자유하며, 교만에서도 벗어난다.

 

 

강해 3. 게으르다 게으르다.

5:1-6:1

 

1. 당황한 모세와 아론

 

1) 바로에게 당당히 하나님의 명령을 전언(1; 3:18-20); 모세가 바로 앞에서 가서 “3일 길을 가서 광야에서 하나님께 예배하며 절기를 지키겠다. 이는 하나님께서 시키신 말씀이다.” 라고 전하였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출 3;19절에 강한 손으로 쳐야 바로가 보내리라고 말씀 하셨다.

2) 황당해 하는 바로; 여호와가 누구인데.... 여호와를 알지 못하니..(5;2) ; 바로는 여러 신들의 전문가였다. 당시 애굽의 200여개의 신이 있으며, 모두 제전이 있고 신전이 화려하게 있는데 여호와는 신전도 없고 제전도 없는 그 시시한 신을 내가 어찌 알겠느냐고 냉소적으로 비웃었다.

놀라운 일은 하나님은 모세와 이스라엘에게만 자비와 긍휼과 인격적인 하나님이 아니라 바로에게도 계속 인격적으로 대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너무나 우리의 인식을 추월하시도록 크신 하나님을 우리는 너무 내편의 하나님으로 제한하고 내 틀 속에 작은 하나님으로 믿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이 당시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3) 음찔하며 다시 한 번 절기 여행을 요구하는 모세와 아론(3) ; 의외의 강한 냉소에 저희들이 제사를 드리게 해 달고 다시 요구한다. 그러면서 하나님이 지시한 것도 아닌데 신이 전염병과 칼로 우리를 친다고 하니 한 번 봐 주세요.” 라고 비굴하게 자기 생각과 변명을 덧붙인다.

우리의 가장 큰 위험은 항상 무언가 잘 되지 않을 때 내 생각을 개입하여 하나님의 생각처럼 밀어붙여서 관철하고 자 하는 경향이다. 최초의 죄인 하와도 사단의 꾀임에 하나님의 명령을 살짝 변경하고 덧붙인 것과 같이 죄 성향인 것이다.

말씀에서 의도하는 바대로 하나님이 의도하신 말씀 그대로 믿고 순종함이 신앙이다. 설혹 그 것이 나의 생각과 대치 될 지라도 말이다.

 

2. 게으르다. 게으르다

 

1) 어처구니 없어하는 바로(4-5, 8-9); 이 땅의 백성이 많아졌고 그들은 저급하며, 비천한 놈들인데 무슨 자유롭게 신을 섬긴다는 것인가라는 조소이다. 그러니 그들이 게으르므로 그런 생각을 하니 더욱 탄압을 해야겠다고 바로가 결심한다.

2) 즉각적인 탄압칙력(6-9, 10-14) ; 저들은 지금까지 한 번도 예배드리지 않다가 갑자기 저런 것 보니 모이지도 예배도 못 드리게 한가한 시간을 주지 말자고 결심하고 지푸라기를 주지 않고 스스로 구해서 벽돌을 이 전과 같은 수량을 찍어내라고 명령한다.

 

3) 게으르다. 게으르다.

이스라엘 패장들의 바로에게 어려움 호소(15-16) ; 패장은 서기관을 의미하며, 바로에게 들어가서 중간에 당신 백성이 어찌 지푸라기도 없이 벽돌을 찍으라고 하는가 왕의 수하의 죄이니 바로 잡아 달라고 고한다.

게으르다. 게으르다.(5:8, 17) ‘혹세무민(惑世誣民)’하는 놈들...

게으르다라는 말은 행동이 게으르다가 아니라 어처구니 없다. 어처구니 없다.’, ‘어이없다. 어이 없다.’는 뜻이다.

우리도 예배나 말씀의 은혜 받고 수련회에 은혜 받고 큰 맘으로 신앙의 삶을 살려하면 이 세상과 사람들은 우리에게 어처구니 없다. 어처구니 없다.’고 놀리거나 빈정거린다. 하지만 이런 것에 머물러 있거나 영향을 받아서는 안 된다. 분명한 것은 하나님은 우리의 생각과 요구보다 크시기에 분명 우리의 바람보다 엉뚱하게 세상에서는 어처구니 없는 거룩한 바보, 져 주는 자로, 희생하는 자로 보이는 것을 겪어야 한다. 어쩌면 세상이 우리를 환영하고 우리의 바람이 너무 잘 되는 그 것이 정말 위험하다.

 

3. 날벼락 백성들

 

1) 날벼락 같은 작업명령(10-12, 13-14)

2) 하나님을 의지 하지 않는 패장들(15-17; 4:31)

3) 원망과 저주

자신들의 몸에 화가 미친 줄을 인지(19)

모세와 아론 너희가 우리를 바로의 미운 물건이 되게하고 그들의 손에 칼을 쥐어주어 죽이려하는구나!(20-21)

여호와께서 너희를 감찰하시고 판단하시길(21)

 

이스라엘 백성의 신앙은 자기 유익만을 추구하도록 돕는 하나님, 결국 이런 하나님에 대한 인식은 애굽의 신들의 수준에서 하나님을 믿었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구원하신다고 하시면서 바로를 더 들쑤시고 백성들은 더욱 노역에 시달리고 그렇게 하실 리가 없다.’ 라고 생각하였다. 그래서, 결국 모세와 아론이 하나님의 구원을 망쳤다고 생각했다.

 

이런 좁은 자기 관점의 신앙은 예수님 제자들의 이 땅에서의 버림 받음과 순교, 바울의 주변인들의 떠나감과 차가운 감옥에서의 마지막 순교, 개척한 교회들이 바르게 서지 못하고 어려움을 겪는 일들, 모함을 받는 일들, 핍박을 받으며, 간질병(또는 안질병)이 낫지 못하는 사역하는 것을 어떻게 해석하겠는가?

 

모세가 하나님 뜻을 따라 지금 바로에게 갔는데 바로가 더 기세 등등하고 일은 더 꼬이고 백성들은 자신을 더 원망하는 이런 것은 무엇인가?

 

세례요한이 자기는 더 쇠하고, 결국 목이 잘려 죽은 것은 무엇인가? 더욱 놀라운 일은 예수님이 이런 세례요한을 여자가 낳은 자 중에 가장 크다고 칭찬한 것은 어떻게 이해 할 것인가? 우리는 이런 세례 요한을 크게 본받고 싶어 하지 않는다. 바른 하나님을 따르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예수님을 위해 가장 많은 헌신자 중에 하나인 선교사가 병들고 선교 당하고, 그 가족이 때로 학대 받는 것은, 개척교회 목사가 사모님이 우울증이 오고, 예수님 잘 믿는 집사님이 암에 걸리고 작정 기도해도 낳지 않고 소천하시는 것은 무엇인가?

우리가 하나님 나라를 위해 애쓰고 힘썼는데 왜 안 좋은 일이 벌어지거나 인원이 줄거나 어려운 일이 있는가이다.

 

하나님에 대한 바른 이해가 중요하다.

 

- 애굽 신을 아는 자기 신앙 수준에서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을 고쳐야 한다.

- 아피스신(송아지 신상)의 형상을 새겼는데 이는 가축신으로 목축업을 하는 이스라엘에게 친근했던 것이다.

- 이는 하나님이 정말 싫어하시는 방식의 신앙생활이다.

- 하나님이라면 그럴 리가 없다. 또는 하나님이 살아계시면 이런 일이 일어날 수가 없다. 내가 이렇게 신앙생활을 열심히 했는데 .... 기도생활을 열심히 했는데.... 등의 생각이나 말을 하여서는 안 된다. 하나님은 나의 생각대로 나의 예측대로 움직이셔야 할 만큼 작은 분이 아니시다.

- 불교식으로 하나님을 생각하면 지적인 만족을 하나님을 통해 누리려 하고

- 샤머니즘식으로 하나님을 생각하면 (특히 지금 50-80대 신앙인들) 기복적으로 하나님을 생각하고, 자가 자학적일수록 하나님을 감동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 유교식으로 하나님을 생각하면 큰 어른이라 체면을 차려야 하고 이해 안 되지만 일단 죄송하다하고 절대 깊이 있게 속 이야기를 고백하는 것은 버릇없으니 대강 아시지요? 라고 머리 조아리는 식으로 신앙생활을 한다. 그래서, 오래 하나님을 믿어도 매우 어려운 관계이며, 깊은 친밀함이 부족하다.

 

4. 곤혹스런 모세(2,4,8,20-21)

 

1) 당당하게 용기 내어 바로 앞에 아론과 함께 나아감(1; 4:27-31)

2) 하나님께 들이대는 모세(22-23); 어찌하여 하나님이 하라해서 바로에게 말했는데 도리어 백성이 학대를 당하며, 백성들은 자신을 또한 오해하게 되는가, 이럴 것이면 왜 나를 보내셨는가에 대한 의문이며, 하나님께 답을 묻는 것이다.

 

 

5. 여호와 하나님의 사역방식

 

1) 모세를 인격적으로 배려해 주심(6;1); “이제 내가 바로에게 하는 일을 네게 보이리라.” 하지만 하나님은 모세나 우리의 계산이나 속도와는 다르게 일하신다. 400년 지나서 출애굽 되며, 나의 대에 한정되지 않고 다음 대에 그 다음 대에 몇 백년 까지 영원까지 내다보시고 나에게 말씀하신다.

 

2) 바로에게도 인격적이신 하나님

바로에게 하나님의 뜻을 대언자를 통해 전달(5:1,3)

무시당하는 히브리인의 하나님 여호와(2)

그분은 이미 바로의 반응을 예견하고 있었다.(6:1; 3;18-20; 4;21-23)

여러 과정을 통해 바로 스스로 내어 보내도록 할 예정

 

3) 모세와 바로에게 자신을 보이시며 알게 하시려는 하나님

바로와 별 다를 바 없는 하나님 아는 지식 ; 하나님을 잘 모르면서 신앙생활을 하는 우리와 다름이 없다. 하지만 하나님은 자신을 여호와인 줄을 알리라 라고 자주 언급하신다. 이는 사랑하는 관계에서 상대에게 나를 일리고 싶은 마음인 것이다.

모세를 훈련시키시는 하나님 ; 출애굽만 목표가 아니다. 광야생활이 가능해야 가나안생활이 가능하다. 가나안은 실제 젖과 꿀이 흐르는 것이 아니라 믿음의 눈으로 보아야 젖과 꿀이 흐르는 것이다.

 

4) 하나님에게 없는 4가지 우리들의 오해, 모세판 어이없다.”(게으르다.)

하나님의 백성을 고통 당하게 하심

나에게 왜 이런 수치를

악한 자가 왜 기승을 부리며 잘 되는가?

하나님은 왜 침묵하시는가?

이런 하나님의 일하심 4가지 오해를 갖는 것은 오늘날 우리 모두의 동일한 모세처럼, 이스라엘 백성처럼 어이없다이다.

이는 하나님의 일하시는 방법을 모르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출애굽에서 10가지 재앙을 주며 시간을 끌고 기다리게 하심은 모세와 이스라엘이 가나안에 들어가 진정한 젖과 꿀이 흐르는 하나님 나라의 풍성함을 누릴 수 있는 수준이 되게 하게 위해 다스리고 성숙시키며 훈련하고 있는 것이다.

오늘 좋은데 내일은 망하는 정도의 복을 하나님이 주시는 분이 아니라 영원히 좋은 것을 이 땅의 잠시 좋은 것을 뺏더라도 주시고자 하시는 아버지 하나님의 커도 너무 크신 사랑인 것이다.

결국 10가지 재앙으로 모세와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더 많이 알아가며 애굽의 종의 자리에서 하나님 백성의 참 자유인으로 성숙하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이 얼마나 이 때 자신과 깊이 사귀며 동행을 원하시는지 나는 스스로 있는 자라시며, 이름의 뜻을 알려주신다. 자신을 가장 많이 소개함은 가장 많은 사랑을 함께 하고픈 하나님의 데이트 신청이신 것이다. 언약의 하나님이 우리에게 신부 되어 주실 것을 요청하시는 것이다.

하나님을 오늘 그저 잠깐 감동이나 뜨거움으로 신비주의로, 낭만주의로 알지 말자. 이는 너무 하나님을 초보적인 수준으로 아는 것이다.

이 땅에 내가 무엇을 이룸보다 내가 그분 하나님 앞에 어떤 존재로 사는가가 본질이다. 그래서, 무엇인가를 이루었을 때나 잘 되었을 때 더 위험한 것이다. 연인에게 진정한 사랑은 무엇을 해 주거나 이루는 것이 아니라 내가 그 분을 사랑하고 귀하게 여기며 그 것이 즐거움과 행복이 되어 잘 존재하는 것이다. 그래서, 결국 내 자체가 그의 선물이며, 그 분 자체를 좋아함이 그 분으로 파생되는 선물과 유익보다 그 분만을 더 좋아함이 성숙한 믿음인 것이다. 내가 비록 원하는 데로 되지 않고 알 수 없는 어려움이 있어도 그 분만 잘 된다면 기쁨이 컸던 세례요한과 바울의 그 자리에 우리는 너무 이르지 않고 있다.

 

우리가 대부분 구하는 땅의 것들은 오히려 많이 잃고 손해 본 분들이 하나님 그 분으로 넉넉히 기뻤던 분들이 성경의 인물들의 공통점이다.

 

우리 하나님은 우리를 영원히 같이 왕노릇하는 자리까지 이끌어 가실 것이다. 이 땅의 잠시 환란을 당하나 이 역시 그 분의 절대 선하심과 크신 사랑에 넉넉히 승리하고 담대 하자. 그 것이 이 땅에 전전긍긍하며 어렵게 사는 종된 세상 사람들에게 삶의 비밀을 물어오게 하는 하늘 나라 삶이 되고 복음의 진보가 될 것이다. 할렐루야

 

강해 4. 나는 여호와라.

6:2-7:7

 

1. 이스라엘 백성에게 자신을 알리시는 하나님; “나는 여호와라라고 본문에만 6번이나 말씀하고 있다.

 

1) 전능한 하나님으로서의 자기계시(엘 샤다이), 4명의 모든 족장이 결혼이 순탄하지 않으며, 자녀를 늦게 얻으며 인간적인 한계를 가지며 하나님이 일하셨음을 명쾌하게 알게 하심

아브라함의 하나님(17:1) - 아주 늦게 8명의 자녀를 두었는데 하늘의 별과 같이 땅의 모래와 같이 하겠다고 하신다.

이삭의 하나님(28:3)

야곱의 하나님(35;11; 43:14; 48:3)

요셉의 하나님(48:3; 49:24-25)

이제 모세의 하나님에서 나의 하나님으로 하나님은 자신을 보이시고자 하신다. 이는 나와 사귐과 동행을 본질상 가장 하고 싶으셔서 자신을 보이시려고 애쓰시는 하나님의 깊은 애정이시다.

 

2) 여호와로 자신을 계시하기 원하심(3)

창세기 족장들은 여호와라는 호칭을 알고 있었다.(4:26; 9:26; 12;8; 13:4; 15;7; 28:13)

여호와의 이름의 의미와 성격을 알지 못함; 이름 풀이(3;13-15)

나는 여호와(6:2, 6, 7, 8, 29; 7:5)

언약의 하나님이다(6:7) 하나님이 우리의 남편이 되시고 우리를 신부 삼으셔서 부부의 결혼과 같이 언약을 지키신다.

기업을 주시는 하나님(6:8) ; 유업을 주시는 하나님이다. 하나님의 복은 천하만민이 나로 인해 복을 누리시게 하시는 것이 진정한 복이다. 당대에 이루려 하지 않으시고 다음 세대에게 이루려고 하는 경우도 많다.

구원의 여호와이시다.

 

3) 바로와 이집트 사람에게 행하신 하나님의 역사

편 팔로 바로를 심판(7:4-5)

내 군대 내 백성 이스라엘(7:4; 6:26)을 구출하겠다.

바로를 완악하게 하여 표적과 이적을 행함, 여호와의 군대 구출 여호와인줄 알게 하리라.(7:3-5)

 

2. 여호와 하나님을 모르고 대하는 사람들; 자기가 아는 방법으로 하나님을 알고 있는 것을 먼저 해결해야 한다.

 

1) 이스라엘 백성(9; 5:21); 모세의 말을 듣지 않음

2) 바로(5:2; 6:12; 7:4-5)

3) 모세

입이 둔한 자니이다(6;12, 30) ; 힘들 때 마다 나오는 원망이다.

하나님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과 아론에게 일을 맡기신다.(13, 26-27)

 

3. 모세의 자기 이해와 정체감.

 

1) 모세 가족 족보소개의 특이점과 의미

야곱의 세아들 르우벤, 시므온, 레위만 소개한다.(14-16) 이는 모세가 다음 세대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

모세와 아론의 뿌리와 태생이 야곱에게 저주 받은 후손이며, 형편 없는 자이며, 나 모세는 문제가 많은 집안의 사람이다. 거기에다가 나는 입이 둔하다고 불평하던 자인데 하나님이 다루시며 훈련하여 사용하셔서 여기까지 오게 하셨다. 그런 분이 하나님이며 나의 부족한 실체이다.

하나님께서 은혜로 선택하셔서 사용하시므로 출애굽의 역사를 이루심 같이 이제 가나안에 들어가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겪어야 하는 너희들도 이 같은 하나님의 선택하심과 사용하심과 하나님의 함께 하심을 의지하라. 자신의 연약함과 못난 것과 상관없이 하나님의 경륜을 이루어 가신다고 모세가 본문에서 말하고 있다.

이제는 너희들 차례이며, 너희들에게도 동일하게 하나님은 일하시고 사랑하시며 이끄실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는 너희들의 연약함과 상관없이 하나님이 그렇게 하실 것이다.

그래서, 족보에 족보의 특징상 꼭 있어야 할 모세의 부모는 이름이 막상 없다. 이는 모세가 의도하는 메시지가 바로 이것이다. 따라서, 이 족보의 중요한 메시지는 모세의 가계도가 알리려 함이 아니다. 하나님의 일하시는 전적인 방식과 은혜, 선택하심, 그리고, 인간에게 자격이 있어서가 아닌 허물이 많음에도 은혜로 선택하셔서 하나님의 사랑을 하나님 나라의 일을 이루어 가신다.

또한 하나님은 일을 많이 하는 것보다 사귐과 동행을, , 우리 자신이 하나님을 기뻐하는 것을 더 소중한 본질로 여기신다는 것을 말하려고 족보로 말하고 있다.

- 르우벤(49:3-4); 야곱의 장남으로 어머니 라헬의 몸종을 범하였다. 10대 초반에 소위 고대근동의 비아그라인 합환채를 어머니 레아에게 권하여 아버지 야곱과 동침하게 했다. 그래서, 야곱이 장자권을 빼앗고 저주를 했다.

- 시므온과 레위(49:5-7) ; 동생 딤나가 세겜에서 강간을 당했다고 보복하기 위해 그들을 가짜 언약을 맺고, 증표로 할례를 행하라고 한 후 전체를 도륙해 야곱으로부터 저주를 받았다.

레위의 게르손, 고핫, 므라리 세아들을 강조한다. 이는 출애굽에서 성소의 기물을 나른 종속으로 하나님과의 관계의 친밀함을 강조한다. 광야에서 하나님과 관계에서 두각을 나타낸 인물을 중요하게 소개하므로 하나님께 중요한 일을 하려고 하기 보다 하나님과 동행하고 친밀한 사귐을 하는 삶이 하나님이 본질적으로 가장 바라시는 것임을 모세는 말하려고 했다.

고핫의 아들 아므람이 고모와 결혼, 아론과 모세를 낳음(20)

아론의 자손들을 비느하스 대까지 소개(20, 23, 25); 비느하스는 가나안 마지막 진입직전 싯딤골짜기에서 반역을 일으킨 사람이다.

고라의 자손소개(24)- 가데스바냐에서 반역을 일으킨 우두머리(16:1-5); 내 조상이요 친척인 고라는 반역자이다. 이런 자격 없는 나를 쓰셔서 하나님은 사귀시고 동행하시며 언약을 이루시고 하나님의 사랑을 보이시니 너희 후손들도 하나님의 그 사랑에 반응하며 살아라고 모세가 말하고 있다.

 

2) 바로 앞의 신이요 대언자로 세움 받은 모세와 아론

바로 앞에 신 같이 되게 함(7:1)

하나님이 바로에게 명한 바를 아론을 통해 바로에게 전언(7;2)

모세와 아론의 명령수행(7;6); 모세는 80세이며, 이론은 83세이다.(7:7)

 

 

 

폐회예배. 동업을 하지 말고 동행을 하자.

4:1-15

 

1. 가인처럼 하나님께 한 일이 자신의 이해 할 수 없는 좋지 않는 결과가 나타날 지라도 하나님께 솔직하게 물으며 고백하는 것이 중요하다.

1) 가인은 자신의 인식의 틀 안에 하나님을 가두고 분노하고 원망하였다.

2) 힘들고 알 수 없는 상황에도 하나님께 고백하고 해결을 구하면 에너지를 다른 곳에 쓰지 않고 본질 적인 것에만 쓸 수 있다. 가인은 하나님께 원인을 물어보고 솔직하게 자신의 마음과 생각을 고백하면 해결을 얻을 것을 혼자 꿍꿍 앓으니 그 에너지가 분노로 나오고 그 것은 결국 동생을 죽이는 것으로 사용된다.

오늘날 교회 안에서나 가정이나 소속 공동체 안에서 다툼과 분리와 갈등이 심화 되는 것은 자신의 모든 것을 하나님께 고백하고 해결하지 않고 하나님께는 해결 된 것처럼 하고 다른 방식으로 해결하려고 하기 때문에 결국 하나님의 뜻과 상관 없는 행동이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2. “어찌하여 얼굴 빛이 달라지느냐?” 라고 하나님이 물어올 때 하나님 저의 제사를 받아주시지 않아서 그러시는데, 왜 받지 않으신 겁니까?” 라고 하시면 하나님께서 다음에는 믿음이 있는 제사를 드리거라. 또는 선행 믿음의 행위가 삶에서 나타나도록 하면서 그 열매로 제사를 드리면 받으마.” 하실 것이고, 가인은 다음에 그 것을 고쳐 행위를 선하게 적용하는 믿음을 가지고 예배 드리면 되는 것이었다.

 

하나님과 동업하지 말고 동행을 하자.

동업을 잘 보이기 위해 체면도 해야 하고 거짓 모습도 모여야 하지만 동행은 솔직하고 구체적으로 의논하고 구하고, 따지기도 하고 하면서 사귐과 관계를 유지하면 되는 것이다. 우리 모든 기독교인들이 하나님과 동업을 하려는 데서 하나님 나라는 이루어지지 않고 일만 많은 종교행위가 되었다.

 

이제 하나님과 동행을 하는 것을 가장 본질로 추구하여 살아가는 삶의 모든 속에 하나님과 같이 걸어가며 오늘 현재 임하는 천국을 누리는 삶이 되자.

 

예수님을 오래 믿을수록 관계와 사귐 하나님 나라가 임하여야 옳은 것이다. 점점 크리스찬이 강팍하고 순수성은 살아지고 사람이 지겨워 지고 매말라 가며 거칠어져서 가장 가까운 가족이나 가장 중요한 동역자가 가까이 하기 싫은 사람으로 변해 있다면 무엇인가 잘못되었다. 가인이 되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과 동행을 하자. 하나님 나라의 그 따스함과 원수까지 용서하고 사랑하고 남는 그 품의 크기를 가장 가까운 이가 늘 느끼는 하나님 나라는 말에 있지 않고 능력에 있느니라 한 그 능력이 동행으로 나타나게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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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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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승호

2014.01.12
14:30:23
(*.62.163.5)
너무 감사합니다.

어남예

2014.01.13
14:21:54
(*.54.65.17)

와~~~~~~~ 인쇄해서 다시 봐야겠어요...

저 같이... 귀한 자리에서 맘 놓고?

졸았던 사람이 있는가하면... 이렇게 또 귀한 선생님이 계셔서

감사합니다.^^

김현진

2014.01.14
18:21:01
(*.116.127.237)

굿굿베리굿입니다.~~

어제 목사님댁에서의 교제도 무지 좋았슴돠.~~~~ ^^

Joy

2014.01.17
12:52:33
(*.251.19.13)

크헐~! 정말 이건 인쇄해서 다시 읽어봐야겠네요.

어떻게 이런 정리가 가능한 건지요.. ^-^;; 경이롭습니다.

일향

2014.02.26
01:05:22
(*.236.98.22)

홈피를 너무나 늦게 들어와서 이제야 이 글을 읽습니다. 존경하는 선생님께서 하시는 앞글에 200% 저도 늘 마음으로 외치며 동의하는 말씀입니다!  선배선생님이자 목사님께서 늘 이렇게 앞장서주시니 무한 무한 감사드립니다.

저도 최선을 다하며 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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