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는 봄인지 겨울인지.

오늘 아침은 무척이나 화가 난다. 인문계고등학교 교사로서의 가장 중요한 일- 아이들을 학교에 붙들어 두는 일-에 계속 실패하고 있다는 속상함때문이다. 옆반은 40명이 빼곡하게 앉아서 차분하게 자습하고 있는데 우리 반은 7명이 나와서 떠들고 있었다. 화를 버럭 낼 수 밖에 없었다. 아이들이 제멋대로 하는 것 같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고 나의 권위가 무너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이다. 하지만 돌이켜 생각해 보면 개교기념일 휴일마저 반납하고 학교에 나와야하는 고3의 현실에서 순종적으로 학교에 끌려나온 아이들이 대단하다고 나 자신을 억누르면서 끓어오르는 분노를 잠재우고 있다. 어제 지역모임에서 성령의 기름부으심이 우리 속에 있고 우리를 가르쳐준다는 말씀이 떠오른다. 잠시 기도해 보았다. 어떻게 해야 합니까라고.

다른 선생님들이 우리반을 찌끄러기반이라고, 쓰레기반이라고-성적이 바닥인데다 흡연하는 학생은 절반을 넘고 있다-말한다. 3학년에 올라올 때 아이들이 기피하는 애들이 고스란히 우리반으로 모였다. 인정할 수 밖에 없다는 패배감에 젖어든다. 희망은 없는가?

교육도시라는 대구의 화려한 선전문구와 창의성이니 뭐니 하는 각종미사여구를 동원해 초등학교때부터 고3까지 교육을 받았지만 부적응한 학생들이 우리 반에 마지막 피난처를 찾아 모여있는 것이다. 아이들의 모습을 보며 교육의 실패를 느끼지 않을 수가 없다. 참담한 실패다. 애써 서울대 몇명, 고려대 몇명보냈다는 현수막으로 부질없이 가려보지만 나는 진실, 대구교육의 참담한 실패를 무표정한 두눈으로 애써 무덤덤하게 바라보고 있다.

그리고, 아울러 나의 무능력을 용기없음을 처참하고도 처절하게 느끼고 있다. 그러나, 슬픔을 통해서 배운다고 하지 않았나? 아직 변하지 않은 내속의 죄악을 심판하시는 주님의 손길이라 생각하며 이 고통을 제대로 100% 음미할 것이다. 변해야 하는 데 말이다. 말만 앞세워서는 안되는데 말이다.

조회 수 :
1686
등록일 :
2010.04.16
09:01:48 (211.43.82.134)
엮인글 :
http://www.tcf.or.kr/xe/diary4/141149/d8f/trackback
게시글 주소 :
http://www.tcf.or.kr/xe/141149

'4' 댓글

김정태

2010.04.16
09:31:49
(*.242.29.149)

대구 교육의 실상이 처절하게 느껴집니다.

어제 요한1서 말씀 중에 세상을 향한 사랑과 하나님을 향한 사랑은 결코 공존할 수 없다는 말씀이 생각납니다. 결코 세상을 사랑치 말라고 왜냐하면 그 속에는 하나님 사랑이 아닌 다른 것,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 뿐이라고.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 교육, 학생들을 소외시키는 가르침, 뒤쳐진 학생들을 지속적으로 낙오시키는 교육은 그 어디에도 하나님의 사랑이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가 일하는 교실 현장이 엄청난 싸움의 한가운데라는 사실을 새삼 깨닫습니다.

싸움에 깨질수록, 얻어터지고 당할수록 더욱더 강해지는 손오공이 되어야 할 것 같습니다.

오승연

2010.04.17
06:08:26
(*.8.83.140)

선생님의 글을 읽으니, 마음이 아픕니다. 무언가 막혀있고 답답하지만, 다시 일어서서 하나님을 바라봐야만 하는 우리 기독교사들..

때로는 어찌할 수 없는 현실을 바라볼 때, 자신감 마져 잃어버릴 수도 있지만..

우리를 세우신 이가 "이 세상을 만드시고 다스리시는 크신 하나님"을 떠올리며 다시 일어서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김정태 선생님의 글처럼, 세상을 향한 사랑과 하나님을 향한 사랑은 함께 갈 수 없는 것 같아요.

힘들더라도 하나님을 붙들고 있을 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가장 좋은 길.. 방법을 보여주시리라 믿어요.

학교에서 힘든 아이일수록 가정방문을 해보면, 대부분 부모님들이 많이 바쁘시거나 가정사정으로 아이들을 잘 돌보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아요. 학교에서라도 관심을 받기 위해서 장난을 심하게 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아요. 저는 부모님들이 아이들에게 관심을 두게 하기 위해서 다음날 준비물이나 필요한 내용을 부모님들 핸드폰 문자로 자주 보내드리곤 했답니다.^^ 가정방문을 해보면, 부모님들 중에는 가정교육이 70%를 넘는다고 말씀하시는 분들도 계셨답니다. 

한연욱

2010.04.17
07:45:48
(*.43.82.134)

 어제 일기를 쓴 후에  자습도망간 애들을 전부 불러서 훈계를 한 다음 다시 집으로 쫒아 보냈습니다. 그리고 지각한 녀석들도 훈계를 한다음 집으로 보냈습니다. 왠지 속이 후련하더군요. 그냥 학교에 붙들어 두는 일만 하다가 반대로 학교에 남아 있으려는 애들을 쫒아보내니까 카타르시스가 느껴지던데요. 어쨌든 속이 후련합니다. 4월 17일 토요일 오늘은 날씨가 화창하네요.

안준길

2010.04.17
08:27:37
(*.106.190.2)

한연욱샘! 극약 처방을 하셨네요. 집으로 쫓겨간 아이들이 왠지 학교 가는 토요일에 집에 있는 느낌이 정상이 아니란 걸 깨닫기를 바랍니다.

 

제가 수업들어가는 반 아이 중 하나도 한 눈에 보아도 도끼눈과 세상에 대한 증오가 가득찬 아이가 있습니다. 제가 장난삼아 잘 쓰는 수업 중 "나와!" 구호에 다른 아이들은 다 자지러지게 웃지만, 그 아이만은 여전한 도끼눈으로 하는 수 없어하는 표정으로 걸어나오더군요.

 

연욱샘 말대로, 성공한 것 처럼 보이는 2%말고, 그저 너무 평범해서 눈에 잘 띄지 않는 50%와, 의도적으로 무관심안에 버려지는 하위 10 %에 대한 배려는 없다고 봐야할 것입니다.

 

힘든 아이들을 맡으면 어느 교사라도 힘들어지게 마련인데, 동료교사들때문에 더 힘들겠네요.

주께서 특별한 은혜와 지혜주시기를 기도합니다.

파일 첨부

여기에 파일을 끌어 놓거나 파일 첨부 버튼을 클릭하세요.

파일 크기 제한 : 0MB (허용 확장자 : *.*)

0개 첨부 됨 ( / )
옵션 :
:
:
:
: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조회 수 추천 수sort 비추천 수 날짜
105 5월 14일 [2] 2027     2010-05-14
오늘 날씨는 서늘하면서도 뭐랄까 청량감있는 기분좋은 날이었다. 배움의 공동체에 관한 자료를 tcf게시판에서 모조리 섭렵해서 다 읽어보았다. 그리고, 예전에 TESOL 교사 연수하면서 수업발표관찰하던 때를 떠올리며 전문가로서의 면모를 가지려 애쓰고 있다...  
104 5월 13일 1705     2010-05-13
학부모 수업공개가 지나갔다. 수업을 공개하는 것이 민망하고 부끄럽고 부담스러웠다. 다행히 고 3 학부모들은 고등학교 현실을 잘 아시는지 적당히 5분정도 있다가 대부분 나가시거나, 국어나 국사 혹은 윤리 같은 과목으로 --아마 알아들을 수 있거나 재미있...  
103 4월28일 [1] 1916     2010-04-29
교단일기 또 써본다. 중간고사기간이다. 일종의 해방감과 안도감이 드는 시간이다. 여유가 좀 생겼다 싶었는지 인터넷을 이리저리 검색하다가 풀무고등학교 홈페이지에 접속해보았다. 아이들의 자유분방하면서도 행복한 표정이 사진으로 올라와있었다. 물론 교...  
102 4월 27일 [3] 2023     2010-04-27
날씨 흐림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는 나자신에게 이야기하기 위해 자판을 두드리고 있다. 지역대표모임을 은혜롭게 마치고 와서 어제 우리 반 학생 하나와 복도가 떠나갈 듯하게 시끄럽게 계급장을 떼고- 순간 내가 교사라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멱살을 서로 ...  
101 TCF에 낚였다...?? [3] 1944     2010-04-22
안녕하세요? 이번에 리더모임 신청한 현유진이라고 합니다. 아무래도 TCF에 제대로 낚인 것 같아서... 글 하나 올리려고 합니다. 08년 여름, 대학 때의 선교단체 친구들, 후배들에게 선교한국 같이 가자고 꼬셔서(?) 다같이 가등록 해놨는데 갑자기 2주짜리 연...  
» 2010년4월16일 [4] 한연욱 1686     2010-04-16
날씨는 봄인지 겨울인지. 오늘 아침은 무척이나 화가 난다. 인문계고등학교 교사로서의 가장 중요한 일- 아이들을 학교에 붙들어 두는 일-에 계속 실패하고 있다는 속상함때문이다. 옆반은 40명이 빼곡하게 앉아서 차분하게 자습하고 있는데 우리 반은 7명이 ...  
99 2010년4월5일 [1] 1997     2010-04-05
월요일아침이라 피곤한 탓인지 2교시 수업하다가 녀석들이 떠들어서 화를 버럭내고야 말았다. 순간 분위기가 찬물을 끼얹은 듯 가라앉아버렸고 수업은 그야말로 암울하게 진행되고 말았다. 나 혼자 교실 벽을 보면서 수업을 했다. 7교시 여학생반에 수업들어갔...  
98 "때" [3] 2008     2009-03-11
3월 둘째 주인데 저는 한달은 보낸 듯합니다. 힘들어서 그런 거겠죠? 저의 세번째 학교인 남원용성고로의 발령 제가 사는 곳은 군산! 전라북도에서 아마도 군산과 남원은 거의 극과 극이 아닐까 생각이 되네요.. 사실 발령나기 전에 남원으로 갈 가능성을 알았...  
97 졸업식 [1] 2080     2009-02-07
내가 맡은 3학년 14반 아이들과의 마지막시간... 이번주 아이들에게 남겨줄 학급앨범과 동영상을 만들었다. 어제는 상장과 상품을 봉투에 미리 넣었다. 오늘아침 파리바케트에 들러서 케익을 샀다. 졸업식이 끝나고 나는 아이들에게 어떤 말을 해야 할까? 떨린...  
96 감동적인 하진이 반 이야기 file 1168     2006-12-15
 
95 샘을 지켜보는 아이들 [5] 1434     2006-08-25
"엄마, 우리 선생님 하나님 믿는 것 맞아요?" "그럼, tcf는 아니지만 기독교사단체에도 속해 있으시다고 들었어." "어, 이상하다. 그런데 왜 수업시간에 '신만이 아셔' 그런 말을 하지?" "아마 샘이 말씀하시는 신은 바로 하나님이시겠지." "그래도 하나님이라...  
94 축복받는 생일 [1] 1336     2006-06-05
작년에 워낙에 아이들과 맞지 않아서 힘들어 했는데 올해 맡게된 중1 여학생들은 예쁘기 그지 없습니다. 사랑하는 자들을 사랑하면 무슨 상이 있겠냐는 성경 말씀이 찔리긴 하지만 그래도 사랑을 더 퍼줄려고 무진장 노력하고 있어요. 아이들 생일이 되면 생일...  
93 나의 대학교 담임선생님 [1] 1428     2006-03-27
**2002년 어느 이름없는 신문에서 좋은교사 저널에서 제이름을 파악하여 원고료도 주지 않으면서 써달라고 해서 실렸던 글입니다. 제 출신대학신문에서 교수님의 정년퇴임소식을 읽으며 이글을 찾아 올립니다.** “ 나의 대학교 담임(?)선생님” “선생님! 어느 ...  
92 하나님이요~^^; [3] 1044     2005-11-01
어제 평소 보다도 늦게 끝나 우리 모임^^ 좋았답니다. 진정한 사랑은 우리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 그렇지만, 짝을 찾아 함께 섬기는 사랑도 꼭 해봐야겠음!!! 저희 반에 3학년 아이가 있는대요~ 머리가 밤톨 같아서, 종종 밤톨이라고도 부르죠! 귀엽답니다. ...  
91 2학기를 시작하며... 769     2005-09-03
개학하여 처음엔 암담..하지만 며칠 가르치니 또다시 물을 만난 물고기가 되어 신나게 아이들과 어울어집니다. 샘들도 그렇죠? 추석연휴에 축제에 또 우리학교만의 다양한 행사들, 휴일들. 어느 선생님은 그래서 1학기때 미리 2학기 진도를 나가기도... 진도가...  
90 부모의 눈물 [2] 712     2005-03-21
아이의 상황을 이야기 하며 학부모가 울었습니다. 저 역시 목이 잠겼습니다. 태어나서 지금까지 아이에 대하여 힘들어 하시는 모습을 뵈며 어떻게 도울까 기도하고 있습니다. 먼저 그 아이를 저희 반의 좌표로 만들기로 하였습니다. 그 아이의 상태에 우리반의...  
89 우리반 단합회 [1] file 757     2005-03-21
 
88 3/19 민승생일, 햄버거, 까부는 아이들 [2] 802     2005-03-21
유미 어머니가 기어이 햄버그를 보내셨다. 기쁜 마음으로 하는 거라시며... 이해는 된다, 다른 반 애들도 그렇게 하는데 그렇게 하지 않으면 미안하시겠지... 종례시간에 유미가 종이가방에 던 햄버거를 건냈다. 받았다. 교탁위에 놓고 보니 초라해보였다. 그...  
87 사랑은 오래참고.. [1] 751     2005-03-21
점심시간입니다. 체육을 내리 3시간하고 났더니 밥맛이 아주좋네요. 오늘엔 아침도 걸렀거든요. 작년8월에 교대를 졸업하고 춘천에 있는 초등학교에서 6학년 체육과 음악을 가르치고 있는데요, 아직 발령이 안나는 바람에 다시한번 예전의 그 학교에서 6학년 ...  
86 저 또한 감사*^^* [1] 702     2005-03-19
저는 오늘 친구와 싸우다가 정신적 충격으로 실신해버린 한 아이와 그 와중에도 사기치는거라며...항상 저런다며... 비아냥거리는 여러 아이들로 인해 너무 큰 충격에 휩싸였습니다. 안그래도 전교회장단 선거로 인해 늦어진 종례 시간...옆반을 오가며 급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