뜻 아니한 전화...


...계절 탓이라 하기에는 너무 가벼운 생각일 듯하고...오늘 뜻 아니한 전화 쪽지가 수업을 마치고 온 내 자리에 놓 있었다. 옆 자리의 동료가 메모해준 것이었다.

'거제도 제자 정규호가 전화하다'

'정규호' ... 생각날 듯 말 듯한 아스라한 기억의 조각들 속에 한 소년의 표정이 희미하게 떠오른다.

1976년 내가 처음 거제도 장승포읍에 있던 해성중.고등학교에서 교사 생활을 하던 시절에 담임했던 중2선반이 생각났다.

그 학교에 2년 간 있으면서 세번 담임을 했는데 첫번이 방금 말한 중2선반이었고, 두번째가 고2선반, 마지막이 중2진반이었다.

이중 중2선반이나 중2진반 둘 중 하나였을텐데 중2선반이었을 것 같은 생각이 좀 더 진하게 든다.

tcf 모임을 마치고 집에 오니 밤 11:10, 정규호에게 전화했다.

전화에서 들려온 목소리는 중학교 2학년 소년의 앳된 목소리가 아닌 삼십대 중반의 남자 어른의 목소리였다. 잠깐 나는 이십년의 세월이 흘러간 것을 잊고 있었던 것이다.

...선생님은 지금도 옛날 모습 여전하실 것 같습니다.
선생님의 가르침을 제대로 실천 못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연락을 못 드려 죄송합니다.


선생님께서는 옛날에 톨스토이의 인생 독본에서 어떻게 살 것인가를 읽어 주셨는데 그것이 늘 생각났습니다. 철학을 공부해서 지금 저도 교사가 되었습니다...

나는 다 잊어 버리고 있는 얘기들을 옛날의 제자는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그 때도 나는 예수님을 믿고 있었지만 예수님 얘기는 직접적으로 하지 않았던 것 같다.

수업 시간, 또는 조회 종례 시간에 한 마디씩 한 것이 이십년이 지났는데도 한 소년에게 영향을 주고 있었다니!...

나는 전화를 끊으면서 스스로 소스라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교사의 책임은 어디까지란 말인가? 조깅복을 입으면서, 그리고 밖에 나와 조깅을 하면서 옛 제자의 희미한 얼굴을 되살려보려 애쓰면서(옛날 교무 수첩을 꺼내 보았더니 유독 그의 사진이 떨어져 나가고 없었다) 이 같이 스스로에게 질문하며 내일 학생들 앞에 설 때는 웬지 긴장할 것 같은 내 자신의 모습이 떠오르는 것이었다.

정규호처럼 이십년만에 연락하는 제자도 있지만 연락하지 않는 제자 중에도 나에 대한 기억이 생생한 제자가 여럿 있으리다는 생각을 하면서 그에게도 정규호에게처럼 나의 기억이 좋은 것으로만 남아 있을지에 대해서는 자신 할 수가 없었다. (1996년 10월 11일 00:52 )

 

 

 


조회 수 :
1034
등록일 :
2001.11.08
13:05:47 (*.248.247.252)
엮인글 :
http://www.tcf.or.kr/xe/freeboard/100004/9ea/trackback
게시글 주소 :
http://www.tcf.or.kr/xe/100004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조회 수 추천 수 비추천 수sort 날짜
3158 Re..수능 감독관인데 복도 감독이라서... [2] 1110     2001-11-07
김대영선생님! 오늘 수능감독하시느라 애쓰셨겠네요. 저는 집이 멀다고 ( 저같은 사람 빼주라고 공문이 내려왔답니다) 감독을 빼주어서 이렇게 집에서 쉬고 있습니다. 이곳을 통해 선생님 소식을 늘 접하며 항상 뵙는듯한 착각을 하기도 합니다. 인터넷이 편리...  
3157 Re..전 글에 대하여 [2] 1014     2001-11-08
선생님께서 하신 말씀이 이해되기 시작합니다. 아니 공감이 됩니다. 삶이 무수한 상황과 경우의 수로 이루어져 있어서 하나하나의 삶의 모습과 철학이 현실로 반영되는 것을 무시했을때 무너져 버릴 사회 가치들이 너무나 많은 것 같습니다. 모든 이에게 강요...  
3156 수능 감독관인데 복도 감독이라서... 1133     2001-11-07
수능 감독이나 복도 감독이라서 교무실에 잠시 들어와 글을 올립니다... 1교시의 일인데 10분 전 쯤 어느 반에서 답안지가 모자란다고 해서 갖다 주고 오다 보니 한 수험생이 혼자서 화장실에 다녀오고 있었습니다. 수험생인지 감독 교사인지를 확인했습니다. ...  
3155 저는 수능1세대입니다. 1305     2001-11-07
저는 94학번 수능 1세대 입니다. 제가 고등학교에 갈때 연합고사에 처음으로 주관식이 도입되었고 제가 대학에 들어갈때 처음으로 대학수학능력시험이 도입되었습니다. 게다가 또 처음으로 수능을 2번 쳐서 더 잘나온 점수를 가지고 원서를 냈던 아주 특이한 ...  
3154 주제가 있는 글 게시판의 11월 주제는 여가입니다. 1032     2001-11-07
11월의 주제는 여가생활 입니다. 다양한 여가 생활의 노하우를 공개해 주시기 바랍니다. 과연 우리 선생님들은 어떻게 여가를 보내고 계시는 지 궁금합니다. 여가 생활을 노하우나, 아니면 주말에 보았던 영화 감상이나, 비디오 감상, 아니면 방콕으로 여가 생...  
» 뜻 아니한 전화 김대영 1034     2001-11-08
뜻 아니한 전화... ...계절 탓이라 하기에는 너무 가벼운 생각일 듯하고...오늘 뜻 아니한 전화 쪽지가 수업을 마치고 온 내 자리에 놓 있었다. 옆 자리의 동료가 메모해준 것이었다. '거제도 제자 정규호가 전화하다' '정규호' ... 생각날 듯 말 듯한 아스라...  
3152 Re..힘내시요 816     2001-11-09
힘내세요.  
3151 지안아~~ 796     2001-11-12
지안아, 안녕? tcf홈페이지에 들어온 게 너무 오랫만이라 너의 소식을 들으니 많이 반갑구나! 먼저 축하해야겠구나! 임신 축하해! 지안이 닮은 어여쁜 아가면 참 좋겠다 ^ ^ 8개월이면 몸도 많이 힘들텐데...... 학교일로 많이 지치겠다. 너무 안스럽네. 그치...  
3150 아내는 연구중... [6] 1007     2001-11-08
아내는 요즘 시범학교 보고서에, 자료까지 만든다고 정신이 없다. 학교를 마치고 돌아오는 차안에서는 거의 녹초가 된다... 그런 아내를 바라보고있으면 참으로 애처러워보인다... 부푼 배를 감싸안고 하루종일 왔다 갔다하다보면 다리가 퉁퉁붓고 팔이 저려오...  
3149 1정연수 1068     2001-11-09
이번 겨울에 1정 연수를 받아요. 아직 날짜가 정확하지 않아서. 옛날에 선생님들이 1정연수 중인데도 수련회에 왔다 갔다 하며 참석하던 모습을 보았는데, 저는 거리가 멀어서 그러기도 힘들것 같고. 빨리 연수 날짜가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수련회 참석할 수 ...  
3148 [기독교사연합사무간사]를 모집합니다. file 840     2001-11-09
 
3147 간디학교 희망의 음악회 935     2001-11-09
제5의 계절 대학수능입시일도 마감하고 이제 본연의 계절을 찾은 듯합니다. 간디학교에서 수학으로 사람을 가르치는 박종하입니다. 대안학교로서 교육의 본질을 고민하던 간디학교가 연세대 100주년 기념관에서 '간디학교 음악회'를 개최합니다. 한영애, 임지...  
3146 우리반 카페 놀러 오세요. 572     2001-11-09
http://cafe.daum.net/greenban  
3145 브랜드있는 기독교사 804     2001-11-10
친구와 함께 국제 광학전시회장에 갔다. 이곳에 많은 외국인이 왔었다. 그리고 많은 외국인들이 계약을 하고 있었다. 안경공장에서 일하는 친구는 계약된 제품은 외국에 7달러로(7700원정도) 보내지만 그들은 브랜드만 붙여서 70달러로(77000원) 세계시장에 내...  
3144 하늘이 주신 아주 특별한 아이 837     2001-11-10
우리 부부와 딸 셋은 특수 시설로 향하고 있었다. 큰딸 메리는 열두 살, 조앤은 아홉 살, 막내 루스는 18개월. 막내 루스가 장애아로 태어났기 때문에, 우리는 그 슬픈 길을 조용히 가고 있었다. 사람들은 루스를 특수 시설에 넣으라고 충고했 다. "짐이 훨씬 ...  
3143 서울교대 예비교사를 위한 기독동문기도회 1110     2001-11-11
2001.11.19(월) 오후 6시 서울교대 예비교사를 위한 기독동문기도회가 열립니다.  
3142 Re..교육의 After Service 809     2001-11-12
올해 들어 10년~7년 전에 담임을 맡았던 학생들이 종종 연락을 해 옵니다. 아이러브스쿨에 조그마한 홈을 만들어 두었더니 선생의 소식이 궁금할 때는 일반적으로는 그곳을 찾는가 봅니다. 그렇게 연결된 제자들 - 졸업과 동시에 대학 생활 또는 군복무를 마치...  
3141 Re..본이 되시는 김덕기선생님! 797     2001-11-12
종종 선생님 글 읽다보면 도전이 됩니다.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은 것 같이 나를 본받는자 되라"던 사도바울처럼 선생님도 저희들에게 그렇게 말씀하실수 있는 분이라는 생각을 종종 합니다. 전 요즘 제가 아이들과 따로 놀때 제가 하고 있는 일들이 다 무익하...  
3140 아이들 속으로 더 깊이 들어가기 - 야간 미팅 1016     2001-11-12
지난 봄의 가정방문에 이어 또 한번의 순방, 야간 학원수강생들 방문길에 나섰다. 오늘 그 시작으로 학원 종합반에 다니는 대영(가명), 동규(가명)를 찾아 갔다. 보통 밤 9시 30분에 마친다고 하여 시간을 맞추어 간다는 것이 김밥을 챙기느라 9시 31분경에서...  
3139 사대 교육학과를 나오면 무슨 교과목 자격증을 갖는 것인지?... [1] 948     2001-11-12
졸업생 중에서 사대 교육학과를 나오면 무슨 교과목 자격증을 취득하게 되는 것인지 물어보던제 제가 몰라서 여기에 여쭈어 봅니다. 아시는 분은 답변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김대영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