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해의 감사 이유

'감사'를 강조하며
우리 아이들을 만날 때 역설(力說)하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무엇보다 나는 '감사'를 자주 강조하곤 한다. '공부를 잘하게 해주셔서'라든가, '건강한 삶을 주셔서', '가정의 화목' 등과 같은 감사하는 이유가 있는 감사도 '감사'지만, 도저히 감사할 수 없을 것 같은 조건에서도 감사하는 것은 진정한 '감사'라고 힘주어 말할 때가 많다.
이것은 세상적인 생각으로는 이해하기가 불가능한 일이다. 오직 주님께서 주시는 삶의 방식, 곧 성경 속의 삶을 통해서만이 이해도, 실행도 가능하다.
"내가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에 배부르며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빌립보서 4:12)"
어떠한 상황에서도 감사할 수 있는 것은 '자족(自足)의 원리'를 이해하고 체험할 때이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에 오직 주님께 맡기고 나아가면 문제의 해결, 위로와 감사, 평강과 만족이 생긴다는 것이다. 이러한 사실을 바울은 이렇게 요약했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빌립보서 4:13)

지선아 사랑해
이제 또 한 해가 저물고 새로운 해를 맞이할 준비를 해야 할 때다. 한 해를 정리하며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와 감사를 적는 시간을 가졌다.
'한 해 감사의 이유 스무 가지 쓰기'가 바로 그것이다.
먼저 아이들에게 백지를 나누어주고 감사에 관련된 비디오 영상물을 보여주었다. 그것은 "지선아 사랑해'의 주인공 이지선 양의 영상과 '타이타닉'에서의 죽어가면서도 아름다운 선율로 연주했던 음악가들의 모습을 담은 영상(낮은울타리 제작) 등이었다. 말로 하는 것보다 영상을 보여주는 것은 아이들에게 몇 배의 감동으로 다가선다. 아이들은 지선 자매의 예쁜 얼굴에 탄성을 내다가 사고 후의 얼굴을 대하고 괴성을 내었다. 그리고 그 모습으로 남을 위해 사는 지선 자매의 모습을 보고 감동 어린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 영상이 끝난 후 잔잔한 음악을 틀어주었다.
'당신은 사랑 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의 답가로 알려져 있는 곡인 '또 하나의 열매를 위하여'가 바로 그것이다.
"감사해요 깨닫지 못했었는데 얼마나 내가 소중한 존재라는 걸, 태초부터 지금까지 하나님의 사랑은 항상 날 향하고 있었다는 걸, 고마워요…"
아이들은 작은 것에 감동한다. 글을 쓰는 것을 무조건 싫어하는 듯 보이지만 꼭 그렇지만도 않다. 아이들의 마음이 과연 움직일까 염려하기 전에 치밀한 준비와 정성이 교사에게는 요구된다.
아이들은 잔잔한 음악을 들으며 스무 가지 감사 이유를 정성들여 썼다. 쓰면서 혼자 웃기도 하고 또 인상을 찌푸리기도 하였다. 간혹 한두 가지를 써 놓고 멍하니 앉아 있는 아이들도 있었지만 대개의 아이들은 스무 가지 이유를 어렵지 않게 채웠다.

아이들이 쓴 감사 이유
"하루하루 인도하심에 감사합니다."
"아빠와 대화하는 시간이 좀더 생긴 것에 감사합니다."
"치아 교정이 아플 것이라 생각했는데 아프지 않아 감사합니다."
"비전을 구하게 하셔서 감사합니다."
"내가 그나마 좀 변화하고 착해진 것 같아 감사합니다."
"우리 엄마, 아빠 이혼 안하고 떨어져 살지 않게 되어서 감사합니다."
"소중한 친구들을 제 곁에 있게 해주신 것 감사합니다."
"고민女에서 조금은 벗어나고 밝게 변하게 된 것 감사합니다."
"아버지께서 아버지학교 졸업하시고 많이 변화되셔서 감사합니다."
"수능 점수 주신 것 감사합니다."
"건강한 몸과 기도할 수 있는 마음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이들이 쓴 글은 평이한 듯 싶었지만 매우 큰 감동이 있었다. 그것은 큰 것이 아니라 작은 것에 감사하는 행복을 아이들이 원하고 있다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특히 엄마, 아빠에 대한 감사의 이유가 많이 나왔다. 이 결과는 가정에 대한 행복의 소망이 아이들에게 가장 큰 것임을 짐작케 한다. 그러나 아빠가 돈 많이 벌어와 감사하다든가, 집이 부자여서 감사하다는 고백은 거의 없었다.
드러난 결과 우리 아이들에게 가장 갈급한 것은 비전이었다. 공부를 하고자 하는 욕심이나 소망은 모두 가지고 있는데, 비전이 있는 아이는 매우 드물었다. 비전이 있는 아이들은 자심감이 넘쳤지만 그렇지 않은 아이들은 매우 불안해 했다. 비전을 갖지 않은 상태에서의 공부는 반쪽 짜리 공부일 가능성이 많기 때문일 것이다.

글을 읽으며
이어서 다 쓴 스무 가지 이유를 읽는 시간을 가졌다. 조명을 밝히고 음악을 깔고 자신이 공개할 수 있는 것만 읽도록 했다. 그러나 아이들은 자신들이 쓴 것을 거의 다 공개했다.
"저는요, 너무 감사해요. 아빠를 도저히 용서할 수가 없었거든요. 특별한 이유도 없어요. 단지 그냥 가정에 무심한 아빠가 싫었어요. 자상하고 따뜻한 아빠들을 보면 얼마나 부러웠는지 몰라요. 그래서 혼자서 얼마나 울었는지 몰라요. 그런데 이번에 하나님께 작정하며 기도했어요. 우리 아빠, 용서하게 해달라구요. 그랬더니 정말 아빠가 불쌍해지구요…."
영은이는 이야기를 하다가 자맥질을 거듭하곤 결국 눈물을 하염없이 흘리고 있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아이들도 울고 있었다. 분위기가 숙연해졌다. 영은이는 이야기를 계속했다.
"정말 우리 아빠가 저를 위해서 우리 가족을 위해서 얼마나 고생하시는지 느껴지는거예요. 우리 아빠가 정말 불쌍했어요. 진짜…로요."
눈물을 주체하지 못한 상태에서 영은이는 억지로 말을 끝냈다. 나는 앞으로 나갔다.
"여러분, 정말 영은이는 올해 마지막 끝을 감사하게 맺고 있지요? 그래요, 여러분들도 용서할 수 없는데 용서해야 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고 봐요. 우리 모두 영은이처럼 그런 마음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하면 좋겠어요. 우리 이 시간 잠깐 발표 순서를 한 템포 늦추어서 영은이 위해 축복송 하나 합시다. '너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라….' 알죠?"
아이들은 서로 손을 내밀고 축복하기 시작했다.
"너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라 하나님의 사랑 안에 믿음 뿌리 내리고 주의 뜻대로 주의 뜻대로 함께 사세요…."

칠판에 가득 붙여놓고
이 글들을 뒤 칠판에 각자 붙여 놓도록 했다. 이모저모로 다른 글씨체로 쓰여진 종이는 칠판 한 가득히 서로 잘 어울리고 있었다. 아이들은 그것을 서로 읽으며 함께 웃기도 하고 깔깔대며 놀리기도 하였다.
생각보다 더 큰 기쁨과 감사가 아이들 사이에 함께 했다.
한 해의 끝 무렵 감사의 마음을 가지고 새로운 해를 맞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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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12.18
00:24:29 (61.73.43.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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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댓글

손혜진

2002.11.30
00:00:00
(*.219.21.90)


저도 2003년이 감사한 이유 10가지 적기는 해 봤는데, 선생님의 방법은 글로 읽기만 해도 감동적이고 감사한 일들이 팍팍 생각이 나겠습니다. 좋은 방법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12/18-09:0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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