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의 기도

조정옥
<<교사의 기도>>

주여 저로 하여금 교사의 길을 가게 하여 주심을 감사하옵니다. 저에게 이 세상의 하고 많은 일 가운데서 교사의 임무를 택하는 지혜를 주심에 대하여 감사하옵니다. 언제나 햇빛 없는 그늘에서 묵묵히 어린이의 존귀한 영을 기르는 역사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신데 대하여 감사하옵니다.

주여, 저는 이 일이 저에게 찬란한 영예나 높은 권좌나 뭇 사람의 찬사나 물질적 풍요를 가져오지 않을 것을 잘 알고도 지루하게도 단조로우며 뼈에 사무치게도 외로운 것임을 잘 알고 있사옵니다. 제가 차지하는 사회적 지위를 천시하면서도 제가 완전하기를 기대하는 지난(至難)한 것임도 잘 알고 있사옵니다. 때로는 찢어지게 가난한 낙도에서, 때로는 다 찌그러진 몇 개의 단간 초가밖에 없는 산촌에서 무지(無知)와 싸워야 하는 노역(勞役)임도 잘 알고 있사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길을 베풀어주신 주의 은총을 감사하옵니다. 이 길만이 사람의 올바른 마음을 키우고 우리 사회와 나라를 번영으로 이끌며 인류를 구원할 수 있는 것임을 깨닫게 한 주의 천혜(天惠)를 감사하옵니다.

주여, 그러나 저는 저에게 맡겨진 이 거룩하고도 어려운 과업을 수행하기에는 너무도 무력하고 부족하며 어리석습니다. 갈 길을 찾지 못하여 어둠 속에서 방황할 때 저에게 광명을 주시어 바른 행로를 보게 하여 주시고, 폭풍우 속에서 저의 신념이 흔들릴 때, 저에게 저의 사명에 대한 굳은 믿음을 주시어 좌절됨이 없게 하여 주시옵소서.

힘에 지쳐 넘어질 때, 저를 붙들어 일으켜 주시고 스며드는 외로움에 몸부림 칠 때, 저의 따뜻한 벗이 되어 주시며, 휘몰아치는 슬픔에 흐느낄 때, 눈물을 씻어 주시옵소서. 세속의 영화와 물질의 매력이 저를 유혹할 때, 저에게 이를 능히 물리칠 수 있는 용기를 주시고, 제가 하고 있는 일에 의혹을 느낄 때, 이를 극복할 수 있는 총명과 예지를 주시옵소서. 주여, 저로 하여금 어린이에게 군림하는 폭군이 되지 않게 인도하여 주옵소서.

제가 맡고 있는 교실이 사랑과 이해의 향기로 가득하게 하여 주시고, 이로부터 채찍과 꾸짖음의 공포를 영원히 추방하여 주옵소서. 모른다고 꾸짖는 대신에 동정으로 일깨워 주시고, 뒤떨어진다고 억지로 잡아끄는 대신에 따뜻한 손으로 제 걸음을 걷게 하여 주옵소서.

길을 잘못 간다고 체벌을 주기에 앞서 관용으로서 바른 길을 가르쳐 주시고, 저항한다고 응징하기에 앞서 애정으로 뉘우칠 기회를 주도록 도와 주시옵소서!

주여, 저로 하여금 혹사자가 되지 않게 하여 주시고 언제나 봉사자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저로 하여금 젊은이의 천부적 가능성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는 기회와 풍토를 마련해 주는 협조자가 되게 하여 주시고, 억압이나 위협으로 자라 오르려는 싹을 짓밟히는 포학자가 되지 않게 하여 주시옵소서.

저로 하여금 모든 어린이를 언제나 신성한 인격으로 대하게 하여 주시고, 그들에게도 그들이 살 권리를 가지고 생활과 세계가 있음을 잊지 않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들은 성인의 축소판도 아니며, 그의 완성물도 아니고, 저의 명령에 맹종하여야 하는 꼭두각시도 아님을 항상 기억하고 있게 하여 주옵소서.

주여, 저로 하여금 교사라 하여 어린이의 인격과 자유와 권리를 유린할 수 있는 특권이 있는 것으로 착각하지 않게 하여 주시고, 교사의 자리를 이용하여 어린이를 저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으로 쓰지 않게 하여 주시고, 의견을 무리하게 부과하는 대상물로 삼지 않게 하여 주시옵소서. 교사의 임무는 어디까지나 어린이의 올바른 성장을 돕는 협력자요, 동반자임을 잊지 않게 하여 주시고, 그의 올바른 성장이 곧 저의 영광임을 기억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주여, 저로 하여금 현재 제가 지키고 있는 어린이들이야말로 장차 우리 나라의 기둥이요, 우리 민족의 계승자임을 거듭 깨닫게 하여 주시고, 그럼으로써 저는 그들을 아끼고 소중히 하며 그들을 도와 올바르게 키워야 할 막중한 책무가 저에게 있음을 의식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저로 하여금 오늘 제가 하고 있는 일이 장차 어린이들이 생활과 행복을 좌우하고, 우리 나라와 겨레의 운명을 결정하는 중대한 요인이 될 것임을 마음속에 깊이깊이 간직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주여, 저에게 힘과 용기를 주시어 십자가를 능히 질 수 있게 하여 주시고, 저를 도우시어 긍지를 느낄 수 있는 스승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오천석 박사의 "스승"책에서)
조회 수 :
404
등록일 :
2003.05.15
10:57:34 (210.104.58.69)
엮인글 :
http://www.tcf.or.kr/xe/diary4/109377/b61/trackback
게시글 주소 :
http://www.tcf.or.kr/xe/109377
파일 첨부

여기에 파일을 끌어 놓거나 파일 첨부 버튼을 클릭하세요.

파일 크기 제한 : 0MB (허용 확장자 : *.*)

0개 첨부 됨 ( / )
옵션 :
:
:
:
: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조회 수 추천 수 비추천 수 날짜
45 야영장 답사 [1] 428     2003-05-31
30일 학생들 신체검사 날이었다. 6월 19일부터 실시되는 야영에 프로그램들을 갔다 줘야 하는데, 수업이 없는 어제로 정했다. 장소는 울진이다. 운전못하는 2학년 부장선생님과 함께 갔다 와야 했다. 가는데 4시간 넘게 걸린다고 했다. 하루 8-9시간 운전. 그...  
44 교회 바자회 483     2003-05-31
목요일 교회 바자회 날이었다. 우리반 아이들에게 교회에 오면 선생님이 맛있는 음식을 준다고 했다. 조금 일찍 퇴근해서 교회에 가 있으니, 제일 먼저 민중이와 재훈이가 왔다. 김밥과 떡볶기를 사주었다. 얼마나 맛있게 먹는지. 조금 있으니 주석, 한열, 창...  
43 연오어머니와 상담 428     2003-05-31
연오어머니와도 가끔 메일을 주고 받는다. 언제 한번 상담을 하고 싶다고 해서 방과후에는 언제든 시간이 있으니 오시라고 했다. 지난 수요일 종례를 마치고 야영프로그램을 짜고 있는데 전화가 울렸다. 교문옆 솔밭에 오셨단다. 그날 따라 수업 5시간에 야영...  
42 학부모 독서교실 485     2003-05-31
지난 화요일 학교 도서실에서 학부모 독서 교실이 열렸다. 지난해에도 계획되었지만 학부모들의 참석이 없어 개최되지 못했다고 했다. 학교도서실에 근무하시는 사서선생님의 유익한 강의가 준비되어 있었다. 물론 안내문을 발송했지만 직장에 다니지 않는 우...  
41 반별 축구시합 [1] 438     2003-05-23
5반 담임인 체육선생님 주최로 방과 후에 1학년 7개반 축구대회가 열리고 있다. 우승, 준우승은 상금도 있다. 전후반 15분씩, 선수도 11명씩 22명이며 토너맨트식으로 하고 있다. 지난주 6반 7반에서 6반이 3-1로 승리, 3반,4반은 3반이 승부차기에서 우승. 5...  
40 그리운 안동여고 학생들 573     2003-05-23
*스승의 날 정성들여 쓴 엽서 42장을 연결해서 책처럼 만들어 꽃과 함께 보내주었다. 그들에게 보낸 답장. 사랑하는 불어반 아그들에게 오늘 너희들의 소포를 받고 얼마나 놀랐는지 몰라. 발신이 안동여고 불어반으로 적혀있어 정말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상자...  
39 우리반 스승의 날 행사 518     2003-05-15
출근하자 마자 희범이가 와서는 "선생님, 현모가 팔에 피가 많이 나요" 자기 팔에다 손가락으로 그으며 말했다. 순간 눈치를 채고 "보건실에 가야겠네" 하며 능청를 떠니까 "선생님이 가셔야 되요"하며 손을 끌었다. 교실과 칠판을 풍선으로 장식하고 칠판가득...  
38 Re..영석이 편지 407     2003-05-21
편지 봉투에 100원 붙인 영석이 편지. To 선생님께 안녕하세요. 제가 여기에다 편지 쓴 이유는 무엇일까요. 이건 나중에 생각해 보세요. 벌써 선생님과 친구들과 지낸 시간이 무려 3달이 되었네요. 시간은 정말 물 흐르는 듯 흐르는 것 같아요. 스승의 날이 찾...  
37 창민이집 방문 471     2003-05-15
교실 흰 커텐이 얼마나 오랫동안 빨지 않았는지 아랫부분은 검은색에 가까왔다. 게다가 찟어진 부분도 몇 군데나 되었다. 창민이 엄마가 옷수선을 하신다. 전화를 드렸더니 세탁과 수선을 해주신단다. 퇴근후 창민이 먹을 과자를 사서 수선집에 들어서니...  
36 봄소풍 427     2003-05-15
다들 눈빠지도록 기다린 소풍. 14일 전국적으로 비가 온다는 일기예보에 가슴 두근두근.. 비가 오면 오는 대로 다른 분위기와 추억을 만들 수 있다고 격려했다. 아이들의 간절한 소망 때문인지 비가 오지 않았다. 대전 국립과학관으로 출발... 물론 1학년 전체...  
35 Re..봄소풍 기념품 457     2003-05-21
소풍때 학생들 1인당 1000원 정도의 상품비가 나왔다. 무엇을 살까 고민하다가 개인 컵을 하나씩 주문했다. 정수기 옆에 컵이 달려 있었지만 위생상 얼마전에 치워 컵을 가져 오게 했지만 안 가져 온 학생들이 많았다. 나머지 경비로 다양한 학용품을 샀다. 소...  
» 교사의 기도 조정옥 404     2003-05-15
> 주여 저로 하여금 교사의 길을 가게 하여 주심을 감사하옵니다. 저에게 이 세상의 하고 많은 일 가운데서 교사의 임무를 택하는 지혜를 주심에 대하여 감사하옵니다. 언제나 햇빛 없는 그늘에서 묵묵히 어린이의 존귀한 영을 기르는 역사에 참여할 수 있는 ...  
33 5월 학부모통신 [1] file 417     2003-05-07
 
32 자전거 타기 [2] 426     2003-05-05
자전거의 도시 상주에 살면서 자전거를 못타다니!!! 88년 상주여고에 발령받아 인사하러 처음 학교에 갔을때 운동장 옆 아주 큰 막사가 지어져 있었다. 무엇하는 곳일까? 그 다음날 학생들의 80%이상이 자전거로 통학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 막사는 자전거주...  
31 떡뽁기 만들기 [2] 639     2003-05-04
토요일 3교시로 마지막 시험이 끝났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떡뽁기 파티. 모둠별로 준비물을 가져왔다. 출근길에 교문앞에 우리반 정환이와 민중이가 서성거렸다. 준비물을 가지고 오지 않아 엄마를 기다리는 중이란다. 떡, 오뎅, 만두, 라면, 삶은 달걀, 양배...  
30 친목회 [2] 441     2003-05-02
목,금,토요일 학생들 중간고사 시험기간입니다. 선생님들은 모처럼 시간이 날때입니다. 첫날은 학년 회식, 오늘은 전체 친목회가 있었습니다. 안동여고에서는 1주일씩 시험을 쳐서 개인적인 시간을 가질수 있었는데 퇴근시간은 오히려 더 늦어지네요. 오늘 주...  
29 한명 한명 [2] 418     2003-04-29
학부모의 전화를 가끔 받는다. 엊그제 충현이 어머니께서는 시험을 앞두고 암기과목 공부를 어떻게 시켜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하셨다. 순간 어떻게 말씀드려야 할지 난감. 아이들이 하는 공부의 대부분은 스스로 원리를 찾고 탐구하는 것 보다 암기위주(특히 ...  
28 규희의 모둠일기 416     2003-04-29
*4월20일 일요일 모둠 친구들아 나 한테 관심이 많은 것 같구나. 아무것도 잘하는 것도 없는데 관심가져 주어서 고맙구나. 충고해 줘서 고맙게 생각한다. 잘 될지 모르지만 노력은 해 볼께. 노력을 해 봐도 잘 안되면 친구들이 잘 봐주면 좋겠어. 나 너무 미워...  
27 오늘일과 [1] 439     2003-04-28
주말이 없다면 어떻게 살까 하는 생각이 새삼들었다. 주말에도 여전히 집안일로 분주하기는 하지만 잠시 낮잠을 자기도 한다. 아침에 직원회의, 1교시 소풍결재, 2교시 학습능력검사, 3,4교시 수업, 5교시 모둠일기 답글쓰기, 6교시 수업. 종례시간 청소문제로...  
26 유리창 와장창창 [2] 436     2003-04-22
점심시간이 끝나갈 무렵 태우과 명우가 헐레벌떡 달려왔다. -선생님, 유리창 깼어요. 그것도 교실 뒷문 아주 큰 유리창이었다. 박정민이가 신문지와 테잎으로 집에서 정성들여 만들어온 단단한 종이공으로 던지기 놀이를 하다가 충현이의 슛팅으로 박살이 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