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리 여행을 갔다 와서는 몸살을 앓고 나니 세월을 훌쩍 보내버린 느낌이다.
봄방학을 한 게 겨우 사흘 전이란 게 믿어지지 않을 정도다.
기운 없는 몸을 이끌고 컴 앞에 앉아 메일을 열어보니 누군가 나를 부른다.
´선생님...´
누구일까..? 가끔 메일을 보내오는 아이들 중 하나겠지...
아니었다.

봄방학날 쪽지에다 ´우리 반 최고의 말썽꾼´이라고 쓴 게 자꾸 마음에 걸리던 복심이었다.
내 마음을 모르고 자칫 상처받는 게 아닐까 하고.. 왜 쪽지 쓰면서는 그 생각 못했을까 자꾸 후회하게 만들던 그 편지의 주인공이었다.

다행히도 그런 나의 걱정은 기우였다.
복심이는 내 생각보다 훨씬 철이 들어 있었고, 그리고 그 한 통의 편지는 봄방학 이후 왠지 허전한 내 마음을 달래기에 충분했다.
정말 해 준 것 하나 없는데, 더 많이 그애를 이해하지 못하고, 더 많이 그애랑 얘기해 보지 못한 게 후회스럽기만 한데, 그래도 감사하단다.
가르쳐 준 것도 하나 없고, 나는 오히려 그애가 나를 밀어낼까 봐 더 가까이 다가갈 용기를 내지 못했는데, 그것도 모르고 내게 감사하단다.
메일을 두번 세번 읽는 동안 뜨거운 것이 눈가에 고였다.

함께 했던 시간 동안 할 수 있었던 더 많은 애정어린 말들과 몸짓을 이제는 할 수가 없다.
그래서 헤어짐은 늘 사람의 마음을 아쉽게 하지만, 헤어짐의 순간만큼은 이제는 함께 할 수 없는 옛것들의 소중함을 생각하게 된다.
그것은 나의 노력과 상관 없이 세월이 내게 안겨준 선물일 게다.
내 손으로 이루어낸 것 하나 없는 시간이었지만, 그것 하나만으로도 내겐 감사할 이유가 있다.
만남이 있으면 헤어짐이 있고, 헤어짐이 있으면 또 다른 만남이 있다는 것...
그 말이 갖는 슬픔과 희망의 아이러니를 이제서야 조금 체험하는 것 같다.

하나님,
잊지 못할 제자를 제게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제 제가 그애에게 해 줄 수 있는 것은 이것뿐입니다.
그 아이가 언제 어디에 있든 그 아이의 마음을 지켜주시고, 늘 함께 해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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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0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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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섭

2001.11.30
00:00:00
(*.245.64.202)
누나누나... 새학기도 더욱 힘차게 하시길 바래요. [02/25-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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