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철이 되면 나는 몸이 여름철만 못함을 느낍니다.

독감 예방 주사를 맞았음에도 11월 중순에 들어오니 몸에 신호가 왔습니다. 그래서 두번이나 병원에 갔습니다. 심한 시기는 간신히 넘기고 이제는 다 낫지는 않았으되 소강 상태를 겨우 유지하고 있습니다.

어제는 전교조 통일 교육 협의회에서 주최하는 통일 교육에 다녀서 9시경 귀가했습니다. 아침에 출근할 때 끼었던 안개가 밤에도 그대로 끼어 있었습니다.

막내 아들이 우리 집 애완견 쌘돌을 데리고 나가려는 것을 내가 대신 데리고 나갔다가 들어와 다리와 배에 묻은 흙을 털어내고 물로 씻어주었습니다.

쌘돌은 이렇게 씻는 것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자꾸 제 손에서 벗어나려고 몸부림칩니다. 씻는 일을 끝내자 겨우 내 손에서 놓여난 쌘돌은 아내가 있는 안방으로 달려갔습니다. 그러자 이내,

'여보, 다리가 여전히 시커매, 어떻게 닦아준 게 이래요?'

하는 아내의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젖어서 그렇게 보이는거 아니겠어요?'

'아니야...수세미로 박박 닦아야해...'

나는 쌘돌을 데려다가 살펴보았습니다. 아내의 말과 같이 다리나 배 쪽이 그렇게 깨끗하지는 않았어도 제가 보기에는 그만하면 묵과해도 될만한데 하는 수준이었습니다.

'...앉아서 그럴 것이 아니라 맘에 안 들며 나서서 당신이 씻어줘요!...뭐 입으로 하는거야 쉽지...'

아내의 말에 차차 짜증이 난 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속으로는 이보다 더한 말이 제 입에서 튀어나오려 하고 있었으나 겨우겨우 누르고 있었습니다.

나에 대한 잔소리가 심하다는 생각과 함께 점점 부글부글 속이 끓어 오르고 어떻게 할까 하다가 아내에게 퍼붓는 대신에 쌘돌을 다시 목욕탕으로 데리고 들어가 온 몸에 거칠게 물을 끼얹고서 수세미로 마구 문질러댔습니다. 쌘돌도 평소와 다른 나의 거친 손길에 놀랐을 것 같습니다.

그러고 마른 수건으로 물끼를 대강 닦아서는

'야, 쌘돌아 아줌마에게 가서 검사 받고 와라. 아직도 마음에 들지 않으면 다시 닦자!'

하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속에서는 이런 말이 아니라 '개고 뭐고 이제 키우는 것 다 집어 치우고 다 갖다 버리자'든가 등의 극단적이고 험악한 말이 자꾸 튀어나오려고 해서 이를 억제하고 있었는데 저로서는 참으로 아슬아슬한 순간이었습니다. 겨우 겨우, 간신히 간신히 그런 순간이 넘어갔습니다. 이런 일은 그 순간만 넘기면 되는 일이지만 아차하는 그 순간을 참지 못하고 튀어 나오게 되면 엉뚱한 데까지 불똥이 튀고 나중에 수습이 곤란한 지경에까지 가게 되고 만다는 것을 과거에 여러 차례 실지로 경험한 저입니다.

'당시 요즘 짜증내는 빈도가 심해요...전교조 활동하더니 그런 것 같어...'

아내가 다시 이렇게 말했습니다. 뜨끔한 말이었습니다. 저의 짜증과 전교조를 바로 연결시킬 줄은 몰랐습니다. 전혀 전교조와는 상관 없는 제 성격, 제 심정의 기복을 제가 잘 다스리지 못해서 생기는 문제일 뿐인데 아내는 이렇게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생각해보니 이렇게도 생각할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제 경솔한 태도를 후회하게 됐습니다. 몸이 좋지 않으니까 절제력도 현저히 떨어지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저는 그 자리에서 '미안하다'는 말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하지 못했습니다.

잠언서에는 해가 지기까지 분을 품지 말라고 했는데...

다음 날 아침인 오늘 아침에도 아내와 나 사이는 냉랭했습니다. 아무도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저도 말하고 싶은 기분은 전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기분대로 행동하면 어떻게 됩니까? 어제 저녁 기분대로 행동했기에 아내와 제가 이런 냉랭한 분위기에 놓인 것 아닙니까?

그래서 기분을 누르고 의지를 발동해서 제가 먼저 말을 열었습니다. 사실은 이따가 전화로 하자는 생각이 제 의지를 훼방하고 있었습니다.

'오늘 저녁에 강정구 교수의 통일 강좌가 있는데 그 것을 듣고 좀 늦게 오니까...'

그러고 나서 겨우 용기를 내서,

'미안해요, 여보, 자꾸 짜증을 내서...'

조회 수 :
646
등록일 :
2001.11.23
10:38:20 (*.248.247.252)
엮인글 :
http://www.tcf.or.kr/xe/freeboard/100105/aa7/trackback
게시글 주소 :
http://www.tcf.or.kr/xe/100105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조회 수 추천 수 비추천 수sort 날짜
3098 리더분중 박목사님 강의안 있으신분은... 705     2001-11-20
리더모임때 박상진목사님이 tcf정체성에 대해 강의하시며 그려주신 그림이 필요합니다. 오늘 저녁 춘천교대에서 강의하는데... 혹시 그림을 편집해서 갖고 계신분은 빨리 파일좀 보내주십시오.(아시지요? 집 그림.)  
3097 어제는 중보기도모임에 갔었습니다. 584     2001-11-20
어제는 선교한국에서 주최하는 중보기도모임에 갔었지요~~~ 신용산교회에서.....했는데... 제 자신이 하나님앞에서 겸허하게 설수 있는 귀한 시간이었습니다. 여러가지 중보기도를 하는중에 (우리나라의 여러가지 문제들.... 청소년.... 아프카니스탄의 전쟁.....  
3096 학급활동 시간에... 3분 묵상 file 587     2001-11-20
 
3095 사진사 마음대로... 597     2001-11-20
전철에 탔는데 만원이었습니다. 그래서 서서 가는데 청춘 남녀가 서로 마주 보며 사랑스런 표정을 짓는 광고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음료수에 대한 광고였습니다. 남자는 여자의 머리 위에 그 음료수 캔을 올려 놓고서 중얼거리기를, '이만큼만 더 크면 좋겠는...  
3094 "한 사람 곁에 또 한 사람~..." 693     2001-11-21
Q.T & Pray 방 140번에 올린 제 글을 읽으시고 기도 지원해 주시길...  
3093 270mm [3] 736     2001-11-21
결연 사례 5 : "270 MM" 나는 축구를 정말 좋아한다. 늦게 배운 도둑질이 무섭다고 했던가. 초등학교 때 그렇게 몸싸움이 싫고, 운동신경이 발달되지 않아서 싫어했던 축구였는데, 교직생활하면서 축구의 매력에 한껏 빨려 들어 버렸다. 그러나 나는 아직 축구...  
3092 Re..교원정년의 이면.. 541     2001-11-22
선생님의 의견에 전적으로 공감합니다. 이번의 1년 연장으로 혜택을 보는 교원은 모두 1500여명이라고 하는데 이 중에서 실제 학생을 가르치는 교사는 불과 300여명일 뿐이고 나머지는 교장, 교감에 해당한다고 합니다. 정말 생각 있는 교장, 교감이라면 어린...  
3091 교원정년의 이면.. 640     2001-11-22
제가 다른 곳에 올린 거라 말이 조금 직선적입니다. 용서하십시요. 교원정년 연장 통과를 바라보며 나 또한 교사이면서도 안타까움을 금하지 않을 수 없다. 한나라당에서는 교원의 사기를 올리기 위해서라고 하지만 과연 1년 연장한다고 그것이 교원의 사기에 ...  
3090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할지.. [3] 657     2001-11-22
오늘 저희 6학년 교실이 술렁거렸습니다. 어제 근처 중학생들이 와서 저희학교 6학년 여자 아이들 중 5명 (확인된 아이들만 )을 때렸습니다. 중학교 교복을 입은 여학생들이 약 7명 몰려 왔던것은 봤었는데 저는 그냥 작년에 6학년들이 눈이 띄길래. '아.. 옛...  
3089 Re..반가와요. 621     2001-11-22
이렇게 종종 글 올려주시니 감사하네요. 나희철선생님 맞지요? tcf를 기억하는 선생님의 마음으로 인해 기쁩니다. ...겨울 수련회도 기도해보는 것이 어떨지요? 그리고 기도방에 가서 춘천 제목 보고 기도해 주세요. 강건하길,그리고 학급 아이들과의 생생한 ...  
3088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1] 675     2001-11-22
tem21 실명제 때문에 실명으로 쓰려 하니 쑥쓰럽네요... 오늘 아침도 어제처럼... 안개 가득 낀 운동장에서 점점 가까이 들려오는 " 타닥 타닥 타닥... " 뛰어오는 아이들 발자국 소리에 교무실에 들어서려다 뒤돌아 보고 웃었답니다. 우리 디모데들이 8시 10...  
3087 항상 감사하기 [3] 653     2001-11-22
제가 쓴 글은 아니구요.... 시가 너무 좋아 옮겨 봅니다. ------------------------------------------------------- -------------------------------------------------------  
3086 어제 이후 오늘.. [1] 531     2001-11-23
타는 듯한 마음으로 인해서 어제는 입 안에 쓴 물이 가득했었습니다. 황폐한 교육.. 이라는 말.. 찬양 가사의 한 부분으로만 인식했었습니다. 흔들리는 아이들 무너진 교육.. 너무 익숙한 표현이어서.. 절실하게 기도하지 못했었고 내가 그정도로만 인식했기 ...  
3085 Re..선생님....멋지십니다. 565     2001-11-24
선생님....... 정말 멋지십니다.  
3084 Re..아내에게 사과하기. 603     2001-11-25
선생님 멋지세요. 한 동안 저도 tcf에 많이 나가지 못했었는 데, 선생님은 어떠신지 궁금합니다. 저 아직 여름 수련회 때 사진값을 못드렸어요. 사진이 굉장히 늦게 도착했는 데, 아니면 학교 교무실에서 몇 주씩 묶었다가 제게 왔는지도 모르지요. 선생님을 ...  
» 아내에게 사과하기. 김대영 646     2001-11-23
겨울철이 되면 나는 몸이 여름철만 못함을 느낍니다. 독감 예방 주사를 맞았음에도 11월 중순에 들어오니 몸에 신호가 왔습니다. 그래서 두번이나 병원에 갔습니다. 심한 시기는 간신히 넘기고 이제는 다 낫지는 않았으되 소강 상태를 겨우 유지하고 있습니다....  
3082 내등에 짐이.. [1] 557     2001-11-23
내 등의 짐이 없었다면 나는 세상을 바로 살지 못했을 것입니다. 내 등에 있는 짐 때문에 늘 조심하며 바르고 성실하게 살아왔습니다. 이제보니 내 등의 짐은 나를 바르게 살도록 한 귀한 선물이었습니다. 내 등의 짐이 없었다면 나는 사랑을 몰랐을 것입니다....  
3081 약속의 땅 앞에서 죽어야 했던 모세... 597     2001-11-23
전에 무슨 말씀을 보며 무엇을 묵상했던가를 보곤 하는데 같이 나누면 좋을 것 같아서... 전에 말씀 묵상을 하며 종종 일기에 정리했던 것을 "큐티나눔"란에 연재?할까 합니다. 요샌 일기를 쓰지 않기에 근래 묵상한 것을 잘 정리한 게 없어서 당분간은 오래전...  
3080 자꾸 눈물이 나네요. 1313     2001-11-24
Name Subject 자꾸 눈물이 나네요. 1, 2교시가 교담시간이라 아이들 없는 교실에서 기도 부탁하러 들어와 글을 쓰려하니 자꾸 눈물이 나네요. 아침에 하림이 어머니에게 전화를 받았습니다. 일 때문에 직접 인사드리지 못하는 것을 무척 죄송스러워하며 하림이...  
3079 다들 울고 있습니다. 579     2001-11-24
Name 나희철 Subject 다들 울고 있습니다. 청소를 끝내고... 반 아이들과 함께 하림이에게 축복송을 불러주었습니다. "애들아, 하림이 위해서 축복송 불러주자. 수화로 하지 말고 그냥 하림이 향해 손 펼치고 " "애들아, 울지 말고 잘 불러야지. 너희가 축복송...